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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과 정리가 주목받는 사회 / 사건의 핵심 못 찾는 결과 낳기도 요즘 책이든 인터넷의 글이든 텍스트의 길이가 짧아야 선이라고 한다.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텍스트의 분량이 많으면 사람이 중도에 그만두게 된다. 사람이 글을 끝까지 읽고 안 읽고야 개인의 판단이다. 하지만 끝까지 읽지 않고 글의 내용을 지레 짐작하면 서로 생산적 대화가 일어나지 않고 오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아무리 짧은 분량을 선호한다고 하더라도 정보와 지식이 꼭 그 틀에 맞춰서 생산되고 유통될 수는 없다.

이렇게 텍스트의 길이가 글을 읽느냐 마느냐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게 되자 책도 두툼한 두께가 아니라 아예 핵심만을 간추려서 쉽게 넘길 수 있는 ‘카드북’ 형태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긴 분량을 요약하고 요령 있게 핵심을 전달하는 능력이 새로운 재능으로 우대를 받게 되었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요약과 정리가 주목받다 보니 언론의 헤드라인, 책의 제목, 제품의 명칭, 공연 예술의 타이틀, 행사의 작명 등이 아주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제목만 보고 읽을지 말지 갈지 말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약과 정리는 누구나 발휘할 수 있는 추상적인 능력의 발휘가 아니라 흥행과 대박을 낳는 신의 한 수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예컨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은 제목이 판매에 큰 영향을 주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기보다 사람의 관심을 ‘낚을’ 수 있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용어가 많이 쓰이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정보를 요약하고 복잡한 내용의 핵심을 정리하는 작업이 사실에 맞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심하면 거짓말이 되기도 한다.

논리학은 철학 중에 사고가 규칙에 따라 진행되었는지를 따지는 학문이다. 사람이 생각해서 말한다고 해도 전부 타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말이 맞는지 그른지를 따져야 한다. 논리학을 배우면 동일률처럼 사고의 규칙만이 아니라 빠지기 쉬운 다양한 오류를 배우게 된다. 오류는 사실과 다르거나 사고의 규칙을 지키지 않아 진리와 구별되는 주장이다. 오류를 진리로 믿는다면 그렇게 내린 판단과 행위는 정당화될 수도 없고 승인을 받을 수도 없다. 작명의 경우 상업적 효과를 거둔다면 현실에서 성공이라고 말한다. 사실과 다른 내용을 부풀리거나 사실과 반대되는 작명을 했다면 분명 특정한 부분과 내용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현실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강조의 오류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사람은 속이게 된다. 이러한 학습 효과를 거치게 되면 유사한 오류에 그냥 넘어지지 않게 된다. 아울러 강조의 오류가 성공 신화와 결합하여 반복되면 우리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과 현상의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거나 잘못 찾아서 잘못된 대비를 할 수 있다.

지난해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오랜만에 집으로 초대하자 순수한 마음에 응했다가 친구의 아빠가 딸의 친구에게 수면제를 먹여 성추행을 하고 끝내 목숨까지 빼앗은 참혹한 사건이 일어났다. 올해 6월에 피해자가 친구에게 “아버지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준다고 해 해남으로 간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실종되었다가 나중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언론에서는 두 사건을 두고 ‘친구 아빠’와 ‘아빠 친구’를 제목으로 뽑아서 각종 흉악 범죄가 타인이 아니라 지인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경찰청이 매년 발표하는 ‘경찰범죄통계’를 인용하여 살인 등 강력범죄 비율이 절반 이상 가족과 지인에 의해 일어나고 성폭행도 지인에 의해 많이 일어난다고 역설했다.

각종 범죄는 엄정한 심판만큼이나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 강력 범죄가 가족과 지인에 의해 일어난다고 ‘믿지 못할 가족과 지인’의 공포를 끌어낸다면 이는 분명 강조의 오류이다. ‘아빠’를 강조하여 잠재적 범죄 가능성과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 하지만 개개인의 이력과 병력, 그리고 심리적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가족과 지인의 프레임을 강조하면 오히려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정확한 원인 규명에 눈을 감게 된다. 이러한 강조의 오류는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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