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수지 더 선과의 인터뷰에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소프트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계획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실이 알려지자, 일간 가디언이 13일(현지시간) 이렇게 논평하는 등 영국 정치권과 언론이 요동치고 있다.
전날 공개된 인터뷰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메이 총리가 발표한 브렉시트 계획안과 관련, 어떻게든 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미국과 수익성이 있는 무역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으로 “영국이 (브렉시트) 거래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영국 대신 EU와 거래를 하는 것이고, 영국은 미국과의 통상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기업인들과의 만찬이 열리는 옥스퍼드셔주 블레넘궁으로 들어서며 계단에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블레넘=EPA연합뉴스 |
초청국 수반을 직접 공격한 이번 발언은 전통적인 외교 관례를 깬 것이라는 평가다. 전례 없는 내정간섭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총리의 기반 약화를 노린 전례 없고, 비(非)외교적인 개입”이라고 혹평했고, 스카이뉴스도 “폭발력을 지닌 개입으로, 정치권에 충격파를 던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이번 발언은 집권 보수당 내의 ‘하드 브렉시트’ 주장 세력의 반발로 궁지에 몰린 메이 총리에겐 큰 상처를 줄 전망이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닥칠 통상 위기를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을 통해 돌파하겠다는 구상을 추진해왔다. 영국은 아직 EU 회원국이라서 독자적으로 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없고, 내년 3월로 예정된 브렉시트 이후에나 양자 협상에 나설 수 있다. 메이 총리가 자국 내 비판 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한 배경인데, 이번에 호되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가디언은 “트럼프는 메이의 입지가 취약해졌다는 것은 알고 있다”며 “트럼프는 이전에도 약한 사람을 조롱한 전력이 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선과 인터뷰에서 소프트 브렉시트에 반발해 사임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에 대해 “훌륭한 총리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메이 총리의 정책을 반대한 ‘정적’ 존슨 전 장관을 공개적으로 치켜세운 만큼 두 사람이 만날 가능성도 있다고 영국 언론은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외교전문가 토머스 라이트는 “미국과 영국의 관계가 1956년 수에즈 위기 이래 최악”이라며 “이는 동맹의 행동이 아니다. 영국의 취약성과 무역협정에 대한 필요성을 이용하려는 약탈자의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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