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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라이프] 우리 술에 빠진 와인 전문가 … “이젠 전통주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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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14 12:20:00 수정 : 2018-07-15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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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주도’ 이지민 대표·이지혜 차장 / ‘계시’ 같았던 진흙속 진주 발견 / 이 대표, 우연히 찾은 전통주 양조장서 / 난생 처음 느껴 본 술 맛에 소름 돋아 / 한 달 고민 끝 우리 술 알리기 사업 시작 /‘전통주 자매’ 운명적 만남 / 홍보대행사 팀장과 인턴으로 첫 대면 / 골퍼들 와인 산페드로'1865'히트 합작 / 희석식 소주·막걸리가 한국 대표 술 ? / 대기업들이 공장서 찍어내는 서민 술 / 실상은 우리 농산물 하나도 안들어가 / "국내 쌀로 만든 술 나올 때까지 홍보"
 “하루는 지인에게서 정부 행사 만찬에 쓸 전통주를 추천해 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아주 까다로운 외국인 VIP가 방한하는데 입맛이 아주 예민하며 술을 좋아하지 않고 누룩향도 싫어한다더군요. 바로 딱 떠오르는 전통주가 충북 청주 화양양조장에서 생산되는 풍정사계 춘하추동의 춘이었죠. 막걸리를 만들 때 맑은 부분만 떠낸 약주인데 배꽃, 메밀꽃, 어린 사과향, 포도향이 어우러지는 마치 화이트 와인 같은 전통주라 외국인도 좋아하리라 여겼죠. 만찬 뒤에 지인과 문자를 하다 깜짝 놀랐어요. 

풍정사계
그 외국인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인 거예요. 그런데 실제 만찬 때는 문재인 대통령과 내빈만 풍정사계가 담긴 잔을 들었다는군요.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코카콜라로 건배했죠. 하하하.” 비록 트럼프에게 맛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만찬 테이블에 오르면서 이 전통주는 현재 없어서 못 팔 지경이란다. 

생산량이 한정돼 구입하려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이 술을 추천한 이가 전통주에 푹 빠져 PR5번가와 대동여주도를 차려 우리 술 알리기에 나선 이지민(39) 대표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전통주 하면 대동여주도를 빼놓을 수 없다. 12일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전통주 홍보에 여념이 없는 이 대표와 이지혜(36) 차장을 만나 전통주의 매력속에 빠져봤다.
대동여주도 이지민 대표(오른쪽)와 이지혜 차장이 12일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다양한 전통주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농산물로 만든 증류주와 우리 쌀로 만든 막걸리가 식탁에 오를 때까지 전국의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전통술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홍보할 작정이다.
남정탁 기자

#와인을 버리고 전통주를 탐하다

사실 이들과의 만남은 처음이 아니다. 9년 전 기자가 처음 만났을 때 이 대표는 수입사 LG트윈와인에서 홍보와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이 차장도 마찬가지. 7년 전 홍보대행사 INR에서 당시 한국에서 와인 중 가장 많이 팔리던 모스카토 다스티 빌라엠 등을 홍보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 그들은 전혀 다른 전통주를 홍보하고 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4년 와인수입사에서 같이 일하던 영업팀 담당에게 연락이 왔어요. 딱 한 번만 전통주 양조장을 가보자고 하더군요. 그는 전국 양조장을 다니며 전통주 유통사업을 하고 있었죠. 하도 조르기에 띠 와인 프로젝트를 함께하면서 친분이 있던 허영만 화백과 함께 이강주, 송화 백일주 등 양조장을 몇 곳 돌아봤죠. 그런데 전통주의 뛰어난 맛에 소름이 돋았죠. 다양하면서 맛이 뛰어난 우리나라 술이 있는지 전혀 몰랐거든요. 마치 진흙 속에 묻힌 진주 같았죠.” 

찾아가는 양조장 지도
이 대표는 평생을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이너리의 잘 차려입은 오너들을 만나며 죽어라 외국 술을 알리다가 이날 문득 깨달았단다. 우리 술을 알리라는 계시라고. 결국 이 대표는 집에 돌아와 남편과 상의해 우리 술을 알리는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 달 동안의 고민 끝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대동여주도(www.facebook.com/drinksool)를 시작했다. 전국의 전통주를 알린다는 뜻을 담았으니 재치발랄한 네이밍이다. “외국 양조장이 벤츠라면 우리나라 양조장은 마티즈예요. 술맛은 너무 좋은데 양조장은 매우 영세합니다. 자신이 만든 뛰어난 술을 어떻게 홍보하는지 모르는 양조장이 대부분이에요. 우리나라의 좋은 술들을 적극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대동여주도를 시작했죠.”

이 차장이 이 대표를 만난 것은 2007년. 이 대표가 팀장으로 있던 홍보대행사 IPR커뮤니케이션에 인턴으로 입사하면서부터다. 골퍼들의 와인으로 소문난 산페드로 ‘1865’를 띄운 것이 바로 이들의 작품이다. 와이너리 설립연도 1865를 ‘18홀을 65타에 치라’는 뜻을 담은 마케팅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여러 브랜드의 PR컨설팅을 담당하던 그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직접 기획, 제작하고 싶다는 마음에 2016년 6월 대동여주도에 뛰어들었다. 

오희
#전통주 도대체 무슨 매력 있길래

지난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VIP 리셉션 만찬에서 세계 정상 건배주로 선정된 전통주는 ‘오희’와 ‘능이주’. 당시 만찬에는 문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이 술을 추천한 것도 대동여주도다. 에피타이저인 훈제송어는 오미자로 만든 스파클링 오희를, 스테이크에는 능이버섯으로 만든 능이주를 페어링했다. “오희는 쌀 막걸리보다 투명하고 탄산 맛이 강한 스파클링 막걸리로 천연 탄산이 톡 쏘는 시원한 맛을 더해 식욕을 돋우면서 즐기기 좋아요.” 만찬 전채로 나온 송어의 빛깔과도 잘 매칭이 되고 담백한 훈제 송어의 맛을 경쾌하게 살려주기 때문에 오희를 선택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차장은 능이주는 중국의 본초강목에서 고기 먹고 체했을 때 다려먹으면 좋다고 한 능이버섯을 넣어서 만든 약주인데 향과 맛이 육류의 기름진 맛을 깔끔하게 잡아주고 향이 육류랑 잘 어울린다며 엄치를 치켜세웠다. 스테이크와 함께 나온 태백산 곤드레 나물밥, 강원도의 각종 나물과도 아주 잘 어울렸다.

“보통 전통주는 음식과 페어링이 약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 음식과 최적화된 술을 찾아서 추천하죠. 능이주는 평소 외국 사람들이 마셔보기 어려운 술이에요. 외국인들은 그 지역의 식재료로 만든 술을 신기하다고 여기며 큰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나는 농산물로 만든 전통주는 경쟁력이 매우 높답니다.”(이 대표)

#희석식 소주가 한국 대표 술이라구요?

대동여주도를 세운 것은 이처럼 숨겨진 전통주의 맛을 알리려는 이유가 크지만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이 있다. 대기업들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소주와 수입 쌀을 쓴 막걸리의 정체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다. 대기업 소주와 막걸리를 보통 우리 술로 여기지만 실상을 알면 깜짝 놀라게 된다. “국내 주정회사가 외국에서 수입된 사탕수수나 타피오카 등을 발효한 뒤 연속식 증류기로 알코올 95% 이상의 주정을 만들죠. 

소주 회사들이 이 주정을 가져다 물을 타고 감미해서 만든 희석식 소주가 흔히 볼 수 있는 대기업 제품이에요. 결국 똑같은 주정을 쓰고 물과 감미만 조금씩 다를 뿐 우리 농산물은 하나도 안 들어갑니다. 막걸리도 마찬가지예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막걸로도 수입 쌀로 만들어요. 

소비자들이 도대체 이 술은 뭘로 만들었고 성분은 뭐고 수입쌀을 썼는지, 알코올에다 물을 탄 건지 알고 마셔야 해요. 정체를 알고 나면 이런 술들은 당연히 소비가 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관련 주류 기업들이 들으면 매우 기분 나쁘겠지만 이 대표는 눈치보지 않고 이런 희석식 소주가 한국에서 사라지게 하는 게 꿈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프랑스 와인이 스페인 포도를 쓰지 않고 일본 사케가 한국 쌀을 안 쓰듯 대기업에서 우리 쌀과 누룩으로 제대로 된 진짜 한국 막걸리를 만들어야 한단다.

“쌀, 보리, 고구마 등 우리 농산물로 만든 증류주로 퇴근 후 동료들과 함께 술잔을 부딪치고, 우리 쌀로 만든 좋은 막걸리가 밥상에 오르는 그날까지 실상을 알리고 전통주를 홍보하는 일을 할 거예요. 사실 와인 전문가인 최 기자님도 전국의 양조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우리 술을 알리고 싶답니다.” 이 대표의 표정을 보니 농이 아니다. 조만간 전통주 기사까지 써달라는 압력(?)이 예상될 정도.

#찾아가는 양조장 함께 갈까요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지만 전통주를 알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처음에는 양조장에서 샘플 술을 보내주는 것조차 인색했다. 술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 직접 양조장을 찾아가 자료를 만들었다. 열심히 홍보하고 언론에 나온 기사들을 다 스크랩해서 보내주면서 하나하나 신뢰를 쌓아갔다.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것은 이미지 작업이다. 소비자들이 전통주 병을 보고 먹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산자를 설득해 병 디자인과 레이블을 교체하고 새로 네이밍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고려시대부터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추성고을의 추성주(秋成酒)다. 원래 도자기 병이었는데 젊은 층이 좋아하지 않고 레스토랑에서 테이블에 흠집이 많이 나 불만이 컸다. 이에 레스토랑 바의 위스키 옆에 놓아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세련된 유리병 디자인으로 바꾸면서 호감도가 크게 올랐다.

전통주를 알리는 채널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네이버 카페 등 다양하다. “채널을 다 합치면 팔로어는 약 10만명이 넘어요. 이런 채널을 통해 2016년 동영상으로 전통주를 마시고 설명한 뒤 지인을 추천하는 식으로 릴레이샷 캠페인을 벌였는데 연예인 등 유명 인사 포함 500명이 넘게 참여했고 50만 조회를 넘었어요. 덕분에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표창도 받았답니다.”(이 차장)

대동여주도 채널을 통해 만화로 명주를 알리고 전통주 칵테일 레시피도 만들어서 소개한다. 니술냉 가이드(www.facebook.com/nsooln)도 인기 채널이다. ‘언니의 술 냉장고’란 뜻이다. 실제 이 대표 집에는 전통주를 포함, 술만 보관하는 냉장고가 3개다. 니슐냉가이드는 우리 술뿐 아니라 맥주 와인 위스키 칵테일 등 다양한 주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소개하고 양조장 투어 영상 ‘자산먹보’도 내보낸다. 지난해 농림부가 만든 종합 우리술 정보 사이트 ‘더술닷컴’의 콘텐츠 제작과 운영도 대동여주도의 사업이다.

“올해는 전국 각지의 양조장을 다니며 가볼 만한 좋은 양조장을 집중 소개할 예정이에요. 해외 여행 때 와이너리 투어를 많이 가는데 정작 우리나라에 그런 곳이 있는지 사람들이 잘 몰라요. 현재 전국에 농림부가 지정한 ‘찾아가는 양조장’ 34곳이 있는데 다양한 체험 활동과 함께 술을 시음할 수 있답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양조장과 함께 제품 개발도 하고 생산·관광체험 복합공간으로 인테리어도 멋지게 꾸미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술 자매와 전통주를 즐겨 보아요.”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이지혜 차장은   
●1982년 서울 출생 ●한신대 광고홍보학 ●PR5번가 차장 ●2017 제8회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 장려상 ●술해설사 자격 수료 ●대동여주도,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콘텐츠 기획 및 제작 ● 2017 광명동굴 와인페스티벌 품질평가위원 ● 월간 외식경영, 더술닷컴 주류 칼럼 연재 ● 홍보대행사 INR 와인PR

■이지민 대표는  
●1979년 서울 출생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광보홍보학 ●PR5번가 대표 ●대동여주도,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운영자 ●유통·소비재 회사, 다국적 IT 기업 등 PR 컨설팅 ●LG상사 트윈와인, CJ푸드빌 마케팅팀 ●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트렌드 출간(주류 파트 담당) ●중앙일보S매거진, 매일경제, 쿠켄 매거진 등 각종 매체에 술과 맛집 이야기 연재 ● 2017,2018 대한민국 주류대상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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