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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의세상속물리이야기] 자석의 물리와 디가우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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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12 21:13:02 수정 : 2018-07-12 2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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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물질로 PC 하드디스크 정보 지워/ ‘제거된 정보 복원’ 기술적 진화도 기대
최근 컴퓨터 내 정보를 파괴하는 기법을 뜻하는 디가우징(degaussing)이라는 단어가 화제다.

여기서 디(de)는 제거를 뜻하는 접두사고 가우스(gauss)는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다. 원래 디가우징은 2차 세계대전 중 지구의 자기장이 군함의 선체에 남기는 자기장의 흔적을 제거해 적의 해상 기뢰로부터 배를 보호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었다. 그러다가 하드디스크를 포함한 자기 저장매체에 기록된 정보를 제거한다는 뜻이 추가됐다.

N극과 S극으로 구성된 자석은 주변에 자기장을 만들어서 다른 자석과 자기력을 주고받는다. 자석 주변에 뿌려진 쇳가루의 형상은 자기장의 패턴을 보여준다. 자기장은 전하의 흐름인 전류 주변에도 생긴다. 나선형 코일로 감긴 전선에 전류를 흘리면 그 속에 자기장이 형성되며 자석의 성질을 띤다. 이것이 바로 전자석의 원리다.

자철광처럼 자성을 띠는 물질 속을 확대하면 무엇이 보일까. 궁극적으로 자석을 구성하는 원자, 즉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도는 전자들이 남는다. 음전하의 전자가 핵 주위를 돌거나 전자의 자전에 비유되는 스핀을 가지면 전류 고리가 만들어진다. 전류 고리는 자기장을 만들기 때문에 이 원자들은 모두 초소형 자석처럼 행동한다. 이 원자 크기의 전류 고리들이 물질 속에서 한 방향으로 정렬하면 자기장이 강해지며 자석이 된다. 그런데 자석의 온도를 올리면 원자 단위로 정렬된 초소형 자석의 방향이 제멋대로 뒤엉키며 자성이 사라진다.

자성물질은 오랫동안 정보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현대 정보사회에서 디지털 정보는 0과 1로 구성된 2진수로 전송되고 저장된다. 광통신의 경우 레이저 펄스의 점멸로 2진수의 두 상태를 만든다. 자성물질의 경우 자기장 극성의 방향을 조절해 2진수를 구현할 수 있다. 가령 자성물질이 만드는 자기장의 N극이 위를 향하면 0, 아래를 향하면 1로 지정할 수 있다. 이에 자성물질을 작은 구역으로 나누고 각 구역별 극성을 조절해 2진수 정보를 순차적으로 저장한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속에는 플래터라 부르는 회전 디스크 위에 정보가 저장되는 자성물질이 얇게 코팅돼 있다. 디스크 위의 자기 헤드는 저장할 정보를 담은 전기 신호를 자성물질 위에 기록하거나 이미 저장된 정보를 읽는다. 가장 전통적인 자기 헤드는 정보 신호를 담은 전류를 헤드의 코일에 흘려 자기장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자성물질의 극성을 정렬시키며 정보를 기록한다. 저장된 정보를 읽을 때는 구역별 자성물질이 만드는 자기장이 헤드의 코일을 지날 때 발생하는 유도전류를 이용한다. 요즘은 자기장에 의해 저항이 바뀌는 자기저항 물질의 이용이 더 보편적이다.

디가우징이란 바로 하드디스크 속 자성물질의 정렬된 극성을 무너뜨려 저장된 정보를 없애는 것이다. 하드디스크를 강한 외부 자기장에 노출시키면 이의 영향으로 자성물질의 극성이 흐트러지며 저장된 정보가 사라진다. 정보의 완벽한 제거를 위해 디가우징을 여러 번 시행하기도 한다. 군사 기술이나 수사 기술의 발전은 어떤 면에서는 창과 방패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디지털 포렌식의 발전이 디가우징으로 제거된 정보를 복원하는 기술적 진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고재현 한림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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