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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10년간 자식처럼 키웠는데”… ‘과일 흑사병’에 농가 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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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12 19:52:23 수정 : 2018-07-12 22:4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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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이 미래다 - 그린 라이프] 방역당국 ‘과수화상병’ 비상 / 나무 검게 마르는 병… 치료약 없어 / 전국 44곳서 발생… 1년새 1.5배 ↑ / 발병 땐 반경 100m 과수 뽑아 매몰 / 재발 방지 위해 3년간 농사 못 지어 / “봄철 냉해·잦은 비로 면역력 약화 탓 / 구체 전파경로 못 밝혀… 적극 신고를” “이제 수확만 기다리면 되는데….”

지난 7일 충북 제천시 백운면의 한 과수원. 박창일(73)씨 과수원의 10년 생 사과나무 415주가 뿌리째 뽑혀 있었다. 채 익지도 못한 초록빛 홍로 사과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과수원 바닥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작은 사과 열매들이 뒹굴었다.

지난 7일 충북 제천시 백운면의 한 사과농장 앞에서 박창일(73)씨가 과수화상병에 걸린 사과나무를 땅에 묻는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포클레인이 과수원을 파헤쳐 사과나무를 하나둘 뽑아낼 때마다 박씨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박씨의 안타까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과나무를 다 뽑은 뒤 포클레인은 집게로 나무를 뭉텅뭉텅 들어 과수원 모퉁이에 파놓은 구덩이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겨울에는 가지를 솎아내는 적과 작업, 봄부터는 수시로 약 치고 잡초 제거하면서 수확할 준비 다 해놨는데, 물거품이 됐어요. 내 평생에 사과농사는 끝났지. 언제 묘목 심어서 다시 사과나무를 키우겠어요.”

박씨가 사과농사를 포기하게 된 까닭은 바로 ‘과수화상병’ 때문이다. 박씨의 사과나무는 지난달 중순 과수화상병에 걸렸다. 그는 “새로 올라온 나뭇잎이 갈색빛으로 말라 비틀어지고 가지도 힘을 잃고 아래로 늘어졌다”며 “설마 하는 마음에 신고했는데 과수화상병으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과수화상병이 발병한 사과 열매. 
연합
주용하 제천시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는 “2015년 처음 백운면의 한 농가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했지만, 이후 2년 동안은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었다”며 “사과농사를 짓는 농장주가 많아 피해가 더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운면 과수농가 181곳(186㏊) 중 과수화상병으로 과수 나무를 모두 매몰한 곳은 47곳(41.8㏊)에 달했다.

과수화상병은 장미과(科) 식물의 잎과 꽃, 가지, 줄기, 열매 등이 마치 불에 타서 화상을 입은 것과 같이 조직이 검게 마르는 병이다. 주요 기주식물(숙주로 삼는 식물)은 배나무, 사과나무, 모과, 살구나무와 산딸기, 딸기, 매실 등이다. 세균성 병으로 벌과 개미 등 곤충과 비·바람, 묘목 등에 의해 옮겨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상병에 걸리면 치료약이 없으며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는 식물방역법에 따라 발생 농가와 반경 100m 내 농가의 과수를 뿌리째 뽑아 매몰하고 있다. 비록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없지만 과일 농사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해 일명 과일 ‘구제역’ 또는 ‘흑사병’으로도 불린다.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땅에는 재발 방지를 위해 만 3년 동안은 과수 농사를 할 수 없다. 묘목이 자라는 기간까지 포함해 적어도 6∼7년은 지나야 열매를 다시 수확할 수 있다. 

◆잠잠하던 과수화상병 1년 새 1.5배 증가

1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5일까지 전국 44개 농가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했다. 발생면적은 34.3㏊로 지난해 발생면적 22.7㏊보다 1.5배 늘었다. 제천시는 올해 발생한 전체 농가 중 56.8%(25개)가 집중돼 과수화상병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이밖에 천안(8), 안성(4), 평창(3), 원주(2), 충주(2)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했다. 전 세계 59개국에서 발병한 과수화상병은 1780년 미국 뉴욕주에서 최초로 보고된 이후 북미와 지중해 연안 나라들을 포함한 다수의 유럽국가에서 발생했다. 2012년에는 중국과 경계 지역인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도 발병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과수화상병 청정국가로 알려졌지만 2015년 5월 경기 안성시에서 처음 과수화상병이 발생했다. 당시 경기 안성, 충남 천안시, 제천시 43개 농장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했다. 인근 농가를 포함해 총 68개 농가(59.9㏊)의 과수를 매몰하는 비용으로 87억600만원의 손실보상금이 지급됐다. 이후 해마다 경기와 충북을 중심으로 4∼9월에 과수화상병이 발병하고 있다. 올해는 강원 원주시·평창군, 충북 충주시 등 그동안 과수화상병이 발생하지 않았던 지역까지 확대되면서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과수화상병이 발병한 사과 열매. 
연합
◆과수화상병 유입·확산 경로 깜깜이… “연구 용역 진행 중”

과수화상병이 전국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지만 방역 당국은 병의 발생 원인과 유입·확산 경로 확인에 애를 먹고 있다. 2년간 잠잠하던 과수화상병이 급속히 번진 까닭으로는 봄철 냉해와 잦은 비로 인한 나무의 면역력 약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강원대 박덕환 교수(생물자원과학부)는 “유전형으로 보면 국내에 발생한 과수화상병은 미국 미시간주 쪽에서 발견된 과수화상병과 유전적 동질성이 높다”며 “다만 과수화상병 세균의 잠복기가 문헌마다 짧게는 이틀, 길게는 600일까지 나와 있어 외부에서 유입된 것인지 아니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 과수화상병 세균이 과주에 머무르고 있다가 적절한 기후조건에 맞춰 발현된 것인지는 추가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개화기 무렵 전국에서 발생한 이상저온으로 인한 냉해가 과수화상병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냉해 때문에 생육에 지장이 온 것은 물론이고 나무 표면에 미세한 상처가 생기면서 이를 통해 과수화상병 세균이 나무 속으로 침투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냉해 이후 온도가 갑자기 상승하고 봄철에 비도 자주 내려 날씨 변화가 크다 보니 나무들이 예전보다 면역력이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확산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홍성준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는 “묘목을 통해 해외에서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유입·전파 경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며 “현재 대학 연구팀과 함께 과수화상병 특성과 유입 경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 용역이 진행 중이다. 농가의 적극적인 신고와 협력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 모든 농기구 소독, 화상병 예방의 첫걸음

과수화상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청결한 과수원 관리와 철저한 나무 유입 관리·통제가 필요하다고 농촌진흥청은 당부했다.

12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과수화상병 예방의 첫 단계는 과수원에서 사용하는 모든 농기구의 소독이다. 만약 전정작업(가지치기)에 쓰는 가위에 과수화상병 세균이 묻어 있다면 가위를 타고 과수화상병이 전파될 수 있다. 농진청은 알코올 70% 또는 일반 락스의 200배 희석액에 농기구를 30초 이상 담그거나 분무기로 골고루 살포해 소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과·배나무의 꽃이 피는 개화기도 주의해야 할 시점이다. 꽃가루를 나르는 벌 또는 나비 등 곤충에 묻어 과수화상병 세균이 다른 나무로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진청은 개화기에 수분용 방화 곤충 이동을 최소화하고, 출처가 불분명한 과수나무의 접목이나 묘목 심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과수원 주변에 병원균이 서식할 수 있는 모과나무, 팥배나무, 벚나무, 살구나무 등은 기르지 말아야 한다.

농진청은 약제방제 시기를 준수하고 과수화상병 등록 약제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와 사과 모두 약제 방제는 월동기 1회, 개화기 2회 이뤄진다. 동계와 개화기 방제약제 종류가 다르며 정해진 품목이 아닌 재료를 섞어서 사용하면 안 된다.

과수화상병 의심 과주를 신고하지 않으면 식물방역법에 따라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과수화상병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시·군·도 농업기술센터 또는 농촌진흥청 재해대응과(063-238-1046)로 신고하면 된다.

제천=글·사진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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