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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닫힌 사회의 위선과 기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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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09 20:50:20 수정 : 2018-07-09 23: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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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겉모양은 개인·열린 사회/의식은 연줄·패거리 문화 여전/부조리·모순 근본적 해결 위해/소위 ‘가진 자’에서부터 개혁을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될 즈음인 1945년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을 펴내 일약 세계적 사회철학자 반열에 오른다. 이 책이 유명하게 된 것은 히틀러의 나치즘과 전체주의의 생성요인을 서양 철학과 문명사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개인을 중심으로 점진적 개혁을 하는 사회를 ‘열린 사회’로 규정한 그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전체주의를 향한 헤겔이나 마르크스, 그리고 플라톤조차도 전체주의의 맹아라고 비판했다.

사회 전체를 한꺼번에 바꿀 수 있다는 혁명론은 서양의 근대와 더불어 각광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등 산업기술 발전을 기준으로 시대 단락을 규정하고 있으며, 정치사회사상으로는 시민혁명과 공산주의혁명도 여기에 포함된다. 더욱이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혁명으로 중첩되는 사회가 반드시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맹자로 대변되는 동양의 혁명론은 하늘(天)을 상징하는 왕과 백성(民)의 삶을 상호 역동적 관계로 바라보면서 왕이 백성의 의식주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항산(恒産)과 항심(恒心·도덕심)을 잃게 했으면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변증법적 역사발전론과 유토피아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칫 전체주의의 유혹에 빠지게 하는 함정이다. 그러나 전체주의는 대량학살과 더불어 인간실존을 참상에 빠뜨리는 환상에 불과했음을 두 차례 세계대전은 보여주었다. 전체주의는 세계의 전체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그것을 이념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절대정신의 질병과도 같은 것으로, 인간 사유의 맹점이기도 하다. 유교문화권의 동양인에게 진정으로 개인중심의 시민사회가 가능할 것인지는 지금도 숙제이다. 동양인에게는 전통적으로 개체적 사고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오랜 역사를 운영해온 중국이 공산화된 사실은 근대사의 수수께끼라고 한다. 유럽에서 근대화가 뒤처졌던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지구상의 공산사회주의가 포진했던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산업으로서의 농업중심과 농노에 가까운 농업인구가 그 큰 원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만 태생 인류학자인 프랜시스 쉬(Francis L. K. Hsu·??光)는 ‘클랜, 카스트, 클럽’(Clan, Caste, and Club)이라는 책을 통해 동아시아, 인도, 유럽인의 삶을 조명했다. 개인주의는 클럽을 만드는 유럽인의 문화 풍토와 통한다. 오랫동안 씨족을 중심으로 살아온 동아시아인에게는 개인주의가 낯설다. 근대화와 산업화로 전 지구촌이 서구화돼버렸다고 하지만, 한국의 경우 여전히 씨족의 변형인 연줄(혈연·지연·학연) 사회가 밑바탕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것이 연줄·패거리 문화이다.

씨족·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마을공동체사회는 개인·산업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이익사회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공산사회주의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 같다. 공산주의는 공동체사회와 닮아있어서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근대적 개인과 자유의 실현에 역부족을 느낀 대중들의 도피처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근대산업국가마저도 후발 국가의 경우 국가전체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보면 ‘국가’라는 제도에 원천적으로 전체주의적 요소가 내재한 것을 의심하게 된다. 국민과의 긴장관계를 상실한 국가는 항상 전체주의적 요소가 고개 들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열린 사회인가, 닫힌 사회인가. 아마도 겉모양은 서구화·산업화로 인해 개인·열린 사회 같지만 그 의식은 연줄·패거리 사회로 닫혀있다. 이러한 패거리 사회의 특징은 근대국가의 법과 정의와 공정성을 좀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지식·권력·재벌 엘리트들은 여전히 씨족·연줄·패거리 의식에 잡혀있다. 그런 점에서 근대국가를 아직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은 소위 ‘가진 자’에서부터 개혁되지 않으면 결코 근본적인 해결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가진 자’는 그 사회의 얼굴이고, 동시에 ‘못 가진 자’가 ‘가진 자’가 됐을 때의 미래 모습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소득 수준에 걸맞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분노와 질투에 휩싸여있다. 이것은 분명 고도성장의 그늘이고, 부익부 빈익빈의 초기자본주의 모순과 같은 상황이지만, 그것에 대한 해결방안의 마련에 있어서도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전형적인 당파싸움의 모습이다. 백년 전 구한말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는 근대국가 형성과정에 시민(주인)의식이 부족한 데에 그 원인이 있으며, 남북한의 체제 경쟁은 이런 맹점이나 내홍을 공격하고 부채질해왔다.

지금 북한은 세계에서 정당한 국가가 되기보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이며 국민소득 3만달러 수준의 한국을 질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완전한 체제보장’(CVIG) 요구는 그것의 일단일 수도 있다. 질투의 여신에게는 보이는 것이 없다고 한다. 질투와 감정싸움을 자제하고, 민족문화를 확대재생산할 거시적 안목과 역사적 방향 설정이 지금보다 절실한 때는 없을 것이다.

서구의 클럽이라는 것도 완전히 열려있는 것이 아니고 계층성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씨족보다는 더 열려있다. 개인의 노력과 성공에 점수를 주고 사회적 위계를 높여주는 것은 열린 사회의 참모습이다. 우리는 지금 ‘패거리 사회의 감옥’에 갇혀있는지도 모른다. 그 속에는 온갖 위선과 기만이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줄사회를 극복하는 처절한 노력이 없이는 선진국은 요원하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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