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20일쯤 일본이라는 나라의 향후 3년간 항로를 결정할 선거가 열린다. 임기 3년인 집권 자민당의 총재를 뽑는 선거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중의원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 당이나 세력이 총리를 배출하며, 현재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자민당의 총재가 아베 총리다. 그는 2012년부터 자민당 총재를 맡고 있으며, 이번에 3연임에 도전한다. 당선될 경우 총재 임기와 마찬가지로 총리 임기도 덩달아 3년 연장된다. 대체로 아베 총리의 승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지만 ‘사학스캔들’이라는 지뢰가 여전히 제거되지 않아 뚜껑을 열어 볼 때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EPA·연합뉴스 |
아베 총리는 자민당이 야당이던 2012년 9월 당 총재에 당선됐고, 그해 12월 중의원 총선거를 승리로 이끌면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처음 총리가 됐지만 ‘사라진 연금’ 문제 등으로 1년 만에 그만둔 바 있다. 2007년 연금기구의 전신인 사회보험청의 연금기록관리가 허술하게 이뤄지면서 주인을 알 수 없는 연금 납부 기록 5000만건이 드러나면서 아베정권에 치명타가 됐다. 그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했고, 두 달 뒤 아베 총리가 물러났다.
애초 자민당은 당규를 통해 총재의 연속 임기를 2기(6년)로 제한해 왔다. 하지만 아베 총리 측의 주도로 지난해 3월 당규가 개정돼 현재 연속 임기 제한은 ‘3기’(9년)로 늘어났다. 예전같으면 출마자격조차 없어야 할 아베 총리가 올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 또 나설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3연임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난해 아베 총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사학스캔들’이 다시 불거지면서 상황이 확 바뀌었다. 새로운 의혹이 드러날 때마다 아베 총리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엉뚱한 대답을 내놓으며 피해가는 아베 총리의 독특한 화법을 풍자한 ‘밥 논법’, ‘신호등 화법’이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밥(식사)을 먹었느냐고 물어보면 쌀밥을 먹지 않고 빵을 먹었으므로 ‘밥을 먹은 적이 없다’는 식으로 대답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 측은 지난달 20일까지인 올해 정기국회가 하루라도 빨리 끝나기를 바라면서 야권의 추궁을 버텨왔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정기국회 회기를 오는 22일까지 연기하는 ‘도박’을 감행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실적을 쌓기 위해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일하는 방식 개혁’ 등 핵심 법안이라며 밀어붙인 것들이 하나도 통과되지 않은 상태로 막을 내릴 경우 아베 총리의 추진력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당 내에서 불거질 수 있다. 다른 후보들의 선거활동기간을 축소하는 효과도 있다. 국회 회기 중에는 총재 선거 운동을 하지 않는 게 자민당의 관례다.
위험 부담이 없지는 않다. 사학스캔들과 관련해 새로운 의혹이 드러날 경우 아베정권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연장국회를 월드컵 축구에 비유하면서 “추가시간 5분은 길게 느껴진다”며 “(국회 회기) 연장도 같다. 추가시간에 어설픈 실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꼽히는 인물은 이시바 전 간사장이다. 그는 2012년 총재 선거 때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2차 결선 투표에서 역전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 최근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면서 ‘반 아베’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
기시다 정무조사회장은 총재 선거 출마 여부조차 밝히지 않을 정도로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고, 노다 총무상은 ‘여성 첫 총리’에 도전하고 있지만 지지 기반이 약하다는 평가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외교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 이번 총재 선거보다는 다음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
기시다 후미오 |
이에 비해 이시바 전 간사장이 이끄는 이시바파(20명)의 세력은 초라하다. 다케시타파(55명)가 이시바 전 간사장을 지지할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그래도 역부족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이 지방표를 얻기 위해 전국을 활발하게 누비는 이유다.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국회의원 405표(1인 1표)와 지방 405표(국회의원표와 동수)를 합친 810표 가운데 과반수 표를 얻은 후보가 있으면 총재로 선출된다. 과반수 표를 얻은 후보가 없으면 상위 2명이 결선 투표를 치르며, 국회의원표 405표와 지방 47표(광역지자체 1표씩)를 더한 452표 가운데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선출된다.
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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