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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안뜰] 〈79〉 소설 ‘여영웅’ 근대화와 친일사이

입력 : 2018-07-10 06:00:00 수정 : 2018-07-09 20: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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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상 연 여성영웅 내세워… 일본, 조선 침략·지배 정당화 영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중국의 고소설은 대개 바다 건너 존재하는 가상의 국가를 통해 중화의 강역을 확인하거나 현실을 비판하는 데 머문다. 반면 우리 고소설은 새 세상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런 줄거리를 가진 대표적인 작품이 홍길동이 율도국을 세우며 끝을 맺는 ‘홍길동전’이고, 소설 ‘태원지’와 ‘여영웅’도 바다로 나가 새 세상을 여는 영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소설의 주인공이 모두 차별받는 소수자였다는 점도 비슷하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서자였고, 태원지의 주인공 임성은 핍박받던 피정복민이었으며, 여영웅의 주인공 이형경은 남존여비의 지독한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여성이었다.

이들이 임금이 되어 세운 나라가 새로운 세상일 것이라는 점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소수자였던 임금은 자신이 겪었던 차별을 철폐한 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 작품은 다분히 ‘진보적’인 성격을 가지며, 특히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여영웅은 이런 색깔이 더 두드러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런데 여영웅을 읽을 때는 보다 비판적 독서가 필요하다. 이 소설이 창작된 시점, 주인공의 행적 등을 가만히 더듬어 보면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일제의 검은 속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제가 조선의 통치 효과를 선전한다며 경복궁에서 개최한 박람회의 전경을 담은 그림. 이런 박람회 역시 일제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작업 중 하나였다.
◆일제의 논리에 꿰맞춘 여성영웅

여영웅의 공간적인 배경은 명나라다. 주인공 이형경은 여성이지만 “여자 치마를 벗고 남복 차림으로 아들 노릇을 하겠다”며 남성의 삶을 산다. 그는 성별을 숨긴 채 과거를 봐 장원급제하고 전장을 누비며 큰 공을 세운다. 용맹함과 덕성을 고루 갖춘 이형경은 모든 부문에서 남성을 압도한다. 그러다 성별이 탄로나자 임금과 동료는 그에게 여성으로 살라고 종용한다.

용맹한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드물지 않다. ‘황운전’, ‘이대봉전’, ‘정수정전’, ‘홍계월전’ 등 적지 않은 작품이 ‘여성영웅소설’로 분류된다. 여성영웅소설 속 주인공은 성별이 탄로 난 뒤 아녀자의 삶을 산다. 분한 심정을 표출하기도 하나 대개 남성 중심의 질서에 순종하는 여성의 삶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여영웅의 이형경은 다른 여성 영웅과 다른 길을 걷는다. 이형경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여성의 삶을 마다한다. 그는 명나라를 떠나 선진 유럽을 유람해 견문을 넓히고, 인도양의 ‘살마이도’란 곳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미개한 원주민을 깨우쳐 근대국가를 만들고 임금으로 추대된다. 고국을 떠나 스스로 새 세상을 만든 것이다. 이형경은 나라를 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국 명나라와 일전을 벌여 승리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여성영웅소설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성차별’과 ‘중화주의’를 문제 삼는 것으로 발전한 셈이다.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 이형경에 대한 묘사는 여영웅을 참신한 작품으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창작 시기와 이 소설이 실린 매체의 성격을 따져보면 석연찮은 구석이 적지 않다. 여영웅은 1906년 대한일보에 연재됐다. 일본인이 창간한 이 신문은 친일적 성격이 강해 일제 논리에 동조하는 사설과 기사를 전달했다. 신문연재소설을 개척한 신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 연재소설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여영웅에 앞서 연재된 ‘일념홍’은 친일적 색채가 농후했다. 여자 주인공 홍랑은 기녀가 되었다가 일본인에게 도움을 받아 해외유학을 했다. 남자 주인공 이정 역시 일본인에게 도움을 받은 뒤 사관학교를 수료하고 러일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일본인이 그들에게 베푼 것은 단순한 도움이 아니었다. 일본인은 두 남녀에게 새 삶을 주었으며, 이로써 일념홍은 일본인을 믿고 따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다.

일념홍이 일본인 미화에 주력했다면 여영웅은 ‘근대화’를 긍정하는 내용이 두드러진다. 이형경은 증기선을 타고 선진 유럽을 둘러보며 북아메리카에서 조지 워싱턴을 보고 감탄한다. 인도양의 살마이도에서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그곳의 미개한 원주민들에게 ‘개명주의’를 가르친다. 이형경은 인재를 뽑아 영국에 데리고 가 농업, 상업, 공업을 가르치며 그렇게 살마이도에서 근대산업을 일으킨다. 갈등이 없던 것은 아니나, 미개한 섬 살마이도는 이형경 덕분에 근대화를 이룩한다. 문명개화를 완수했다고 판단한 이형경이 섬을 떠나려고 하자 원주민들은 울며불며 붙잡는다. 그들은 자립을 고민하지 않으며 그저 외부인인 이형경에게 매달릴 뿐이다. 미개하고 수동적인 살마이도 원주민은 그대로 조선 인민과 겹친다.

일제는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끊임없이 사상전을 벌였다. 소설 ‘일념홍’도 그중 하나다.
◆신화 연장선에 있는 일본의 조선 근대화 주장

바다를 건너온 여성이 원주민을 다스리는, 우리 고소설의 전통과는 거리가 있는 이런 설정은 일본 신화에 맥이 닿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고대 한반도를 다스렸다고 주장하는 진구황후의 신화가 그것이다.

신화 속 진구황후는 한반도에 넘어와 삼한의 항복을 받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 이 신화 속 고구려, 백제, 신라는 변변한 전투조차 벌이지 않고 복종했다. 해협을 건너와 삼한을 통치했다는 신화 속 진구황후처럼 여영웅의 이형경은 바다를 건너와 살마이도를 다스렸다.

여성영웅소설 ‘여영웅’의 주인공 이형경은 인도양의 미개한 섬 ‘살마이도’를 근대화시키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이는 고대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일본 신화 속 진구황후를 떠올리게 한다. 진구황후를 묘사한 그림.
임금이 된 이형경은 관청을 설치하고 각국에 사신을 파견해 독립국 면모를 갖춘다. 사관학교를 세워 장교를 배출하는 한편, 섬나라라는 점을 고려해 해군을 양성한다. 해군은 병력 2만명, 전투함 8척, 구축함 50여척, 수뢰정 300여척, 운송선 500여척을 갖춘 신식 군대로 완성된다.

이형경이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명나라는 전쟁을 일으킨다. 명분은 세 가지였다. 천자의 명을 받지 않은 채 왕이 되었다는 것, 군대를 길러 중국에 위협이 되었다는 것, 여자이면서도 남자 행세를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세 가지 이유 모두 전근대 가치관을 대변한다. 살마이도가 이형경을 통해 근대화를 이룩했다면 명나라는 여전히 전근대에 머물고 있다.

명나라는 수군 10만명을 동원했다. 살마이도 해군의 다섯 배 규모였다. 병력으로 살마이도 해군을 압도했으나 전쟁은 명나라의 패배로 끝났다. 살마이도 철갑선이 포문을 열자 명나라 수군은 전의를 잃었다. 이 전쟁은 ‘근대’와 ‘전근대’의 격돌이다. 살마이도 해군은 신식 군대였으나 명나라 수군은 구식이었다. 역사 속 청일전쟁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다.

일제는 근대화된 해군으로 청일전쟁에서 청나라의 북양함대를 격파했다. 이형경이 오기 전의 살마이도는 전근대의 조선이며, 이형경이 통치하는 살마이도는 ‘미래’ 조선이었다. 여영웅은 미개한 조선이 근대화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형경처럼 근대를 익힌 외국인의 통치, 즉 일본의 통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형경은 전쟁을 치르고서도 명나라를 돕기까지 하는데 해군 양성, 전쟁 승리, 원조로 이어지는 이런 서사는 당시 일제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다. 중국은 옛 위세만 믿는 낡은 나라다, 청일전쟁처럼 조선은 근대화로써 중국을 이길 수 있다, 근대화된 국가는 문명국으로서 아시아 평화에 이바지한다 등의 이야기인 셈이다. 

홍현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이야기로 정당화된 식민통치, 끝나지 않은 일본과의 사상전

을사늑약 전후로 한 시대상과 함께 읽으면 여영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일제는 조선을 병탄하려 쉼 없이 사상전(思想戰)을 전개했다. 총칼 없는 전쟁의 최선봉은 ‘이야기’였다. 일제는 이야기를 동원해 식민통치를 ‘정당한 일’로 꾸며댔다. 여영웅은 근대화를 선망하며 일제의 주장을 비판 없이 좇았던 작품이었다.

일본을 모델로 삼은 것에 민감하게 반응해 부정적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다. 이형경이 명나라를 떠나는 부분이나, 살마이도에서 교육입국을 실현하는 내용은 여영웅이 나올 당시에도 여전했던 중화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부국강병을 위한 과제라는 점에서 시대를 선도한 주장으로 음미할 만하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과 그것이 초래한 막대한 피해에는 눈감고, 식민지의 경험으로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느니 하는 주장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여영웅 같은 작품은 더욱 비판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풀지 못한 과거가 온전하고, 그로 인한 사상전은 아직 ‘진행형’이다.

홍현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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