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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두만강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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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05 23:34:10 수정 : 2018-07-05 23: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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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은 종교 믿으면 감옥 보내면서 / ‘신앙의 자유’ 있는 것처럼 포장 / 2500만 인권이 수령 1인에 종속 / 남북 교류해도 실상 바로 알아야 어떤 분이 카톡을 보내왔다. ‘환영! 남북한 기독교 연합예배 드리기로 합의. 삼천리 반도에서 울려 퍼지는 찬송과 기도의 역사가 재현되길 기원합니다.’ 남한의 조국평화통일협의회와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관계자들이 최근 평양에서 통일 기도회를 갖기로 합의한 것을 축하하는 카톡 메시지였다. 두 단체는 그간 평양에서 여러 차례 공동 기도회를 가졌다고 한다.

4년 만의 남북 기도회 소식에 묵은 잔상이 뇌리에 떠올랐다. 북한 종교의 진짜 모습이다. 평양에도 교회와 성당은 있다. 북한은 1980년대 남한에서 종교단체들이 민주화투쟁을 벌이자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을 세웠다. 신의 부름이 아니라 당의 지시로 탄생한 특별 시설인 셈이다. 당 간부들이 주민들을 가짜 신도로 뽑았으나 참석률이 매우 저조했다. 종교를 ‘제국주의 침투의 도구’로 비판했으니 제 발로 예배하러 나올 리 만무했다. 그러자 정반대의 혁명 논리가 동원됐다. “찬송가를 부르고 종교의식에 참가하는 것은 미제와의 반미 성전에 떨쳐나선 남조선 종교계 인사들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세뇌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출석부까지 등장했다. 출석이 저조한 사람은 생활총화에서 비판을 당했다.
배연국 논설실장

소중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종교계를 비롯한 각계의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든 진실에 기초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북의 거짓을 믿어선 안 된다. 거짓으로 만든 평화는 ‘가짜 평화’이고, 가짜는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창조주의 신성이 부정되는 사회다. 백두혈통으로 포장된 ‘아버지 수령님’이 창조주의 권능을 대신한다. 수령 이외의 ‘아버지 하느님’을 믿는 행위는 금지된다. 수령 절대론에 배치되는 반역행위에 해당하는 까닭이다. 북한에는 그런 ‘반역자’ 10만명이 정치범으로 갇혀 있다. 헌법이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헌법보다 높은 것이 김씨 왕조의 ‘말씀’이다. 당의 10대 원칙, 조선노동당규는 수령의 영도력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한이 남북이나 북·미 협상에서 안전을 보장받기를 원하는 것은 이런 폭압적 수령체제이다. 수령은 북한에서 ‘최고 존엄’을 지닌 초법적 존재이다. 최고 존엄은 2500만 주민의 인권 위에 군림한다. 그것을 훼손하면 재판 없이 처형되고, 수령 한 사람을 위해 언론이나 거주이전의 자유도 박탈된다. 이웃한 시·군으로 잠시 다녀오려 해도 인민반장에게 미리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잘 훈련받은 예쁜 여성들은 수령에게 성적으로 봉사하는 일을 기쁨으로 여긴다. 재벌회장 자녀의 ‘물컵 갑질’에 분노하는 우리가 이런 ‘슈퍼 갑질’에 침묵하는 것은 균형감의 상실이다.

우리가 남북 교류와 통일을 추진하는 목적은 악(惡) 이 아니라 선(善)의 확장에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신장에 있지, 노예체제의 신장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인류 역사는 자유와 인권을 고양하는 노정을 걸어왔다. 혹여 남북의 교류협력이 김정은 독재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면 역사의 퇴행이 될 것이다.

자유와 인권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된다. 수많은 탈북자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수만리 대장정에 오른다. 독재의 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고향과 혈육을 등진 이들이다. 대한민국에는 그런 자유의 투사들이 3만여명이나 살고 있다. 6·25전쟁으로 생긴 과거의 이산에 가슴 아파 하면서도 현재의 이산에 눈을 감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모순이 없다.

일제 치하에서 가수 김정구는 ‘눈물 젖은 두만강’이란 노래로 독립투사들의 한을 달랬다. 그 두만강에서 매년 봄철에 얼음이 풀리면 탈북하다 총에 맞은 사람들의 시신이 떠내려온다. 두만강은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민족의 비극을. 동포의 고통에 침묵한 채 평화만 외치는 한강의 무관심을.

진실을 알고도 그 길을 가지 않으면 거짓의 삶을 살게 된다. 대한민국이 결코 가지 말아야 할 길이다. 안타깝게도 거짓의 그림자가 요즘 자주 어른거린다. 그런 현실이 핵보다 두렵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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