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2시쯤 서울 중구 대한문 앞 광장에는 난데 없는 곡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60∼70대로 보이는 여성 몇몇이 광장 한켠을 빙 둘러싼 경찰과 마주한 채 내는 소리였다. 슬픔과는 거리가 먼, 조롱에 가까운 소리였다. 이들과 일행으로 추정되는 노인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거들었다.
4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 시위’를 벌여 온 보수단체 관계자들과 쌍용자동차 해고자 고 김주중씨를 추모하는 분향소 운용자들 사이의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이 양측 중간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이재문 기자 |
해고 이후 복직이나 취업이 되지 않아 신용불량자가 된 김씨는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거나 운전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장석원 금속노조 대외협력부장은 “시민들이 김씨를 애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정부에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자 분향소를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때부터 이 장소에서 ‘태극기 집회’를 이어온 태극기행동국민운동본부(국본)가 분향소 설치에 반발하고 나섰다. 국본 회원들은 전날 분향소가 설치되기 전부터 몰려와 항의를 이어오고 있다. 광장의 다른 한 구석에는 국본이 설치한 천막과 방송차 등이 자리잡았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 광장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려는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태극기행동국민운동본부 회원들 간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
보수단체 태극기행동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문 앞 광장에 설치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故) 김주중씨의 추모 분향소에서 추모객들이 조문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오후 5시20분쯤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표창원 의원이 분향소를 찾았다가 봉변을 당했다. 두 의원이 절을 하는 동안 욕설과 함께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는가 하면 자리를 뜨던 표 의원이 한 남성에게 거세게 뒷덜미를 잡히면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추모객 대다수는 이에 아랑곳않고 비장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으나 한 여성은 서러움에 북받친 듯 손수건으로 연신 눈가를 닦아냈다. 경찰은 이날 양측의 충돌에 대비해 현장에 경력 120명을 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상황이 조금 유동적이라 언제까지 경력을 배치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쌍용차 범국민대책위는 2012년 같은 장소에 분향소를 설치해 약 1년 간 운영한 바 있다. 중구청은 2013년 도로교통법 위반 등을 이유로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고, 그 자리에 대형 화분을 뒀다. 이후 분향소는 쌍용차 평택공장 앞으로 옮겨졌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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