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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이민자의 나라'는 없다…미국의 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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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03 09:00:00 수정 : 2018-07-02 17: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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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입국 부모·자녀 격리’ 비판 들끓는데 … 귀 막은 트럼프 / ‘이민자의 나라’ 문구 지난 2월 삭제 / 국경장벽 높아지고 이민 문호 닫혀 / 공화·민주, ‘다카’ 대체 입법안 평행선 / 서로 양보 주문… 정치적 득실 ‘저울질’ / 이민자 집단 11월 중간선거 등 주목 / 경합주 지역 정치인들 나서 길 기대
미국은 더 이상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강경 이민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국경 장벽을 높이고 이민 문호를 닫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체류 허가를 취득했던 ‘다카’(DACA·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 수혜자들은 트럼프 정부의 다카 폐기 선언으로 추방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불법체류자 보호도시’(피난처 도시)는 연방정부의 재정 중단 압박을 받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진보 성향 지역의 주정부와 보수적인 연방정부의 이민법 소송에서 연이어 트럼프 정부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민정책은 미국 정부의 고유한 권한이지만, 외부 시선은 싸늘하다. 지난 대선에서 맞붙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필두로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일각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도 백악관에서 들려오는 메아리는 크지 않다. 백악관 외부에서는 귀를 막은 듯한 권력자를 향한 뜨거운 분노의 화음이 전해지고 있다.
강성 이민정책 반발 시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EPA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전날 백악관 앞 광장을 비롯해 미 전역 750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회가 열렸다. 미 언론은 전국적으로 섭씨 30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 인구 28명이 거주하는 노스다코타의 작은 마을에서 인구 1000만이 넘는 뉴욕 등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곳곳의 집회에서 트럼프 정부의 ‘무관용 이민’ 정책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표출됐다고 보도했다.

시위의 주된 목적은 밀입국자를 체포해 그들의 미성년 자녀와 격리 수용하는 정책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20일 그간의 방침을 철회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무관용 정책이 남아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내걸었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기조에 따른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취임 이후엔 대선 공약이었던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조건으로 이민법 개정에 나서라고 의회를 압박했다. 미 언론은 건국의 토대이면서 인권의 근거인 이민이 트럼프 정부에서 정치적 거래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개탄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이민정책에는 일반인들도 동의하지 않는다. 여러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절대다수는 다카 폐지에 반대하고, 미국식 사고방식으로 자란 젊은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서류 미비 이민자(불법체류자) 집단이 미국 경제에 손해를 끼치는 것보다 기여하는 게 많다는 보고서는 즐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할아버지가 독일에서 이주한 이민 3세이다. 그의 어머니는 영국 태생 이민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설득력 없는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자를 아내로 뒀기에 그의 주장은 더 민망하다. 시민권을 취득한 지 10년 남짓 만에 백악관에 입성한 역대 ‘퍼스트레이디’는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처음이다. 멜라니아 여사의 부모는 딸의 초청으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가족초청 이민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관용 이민정책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전망 자체가 불가능하다. 체포된 밀입국자의 부모와 그들의 미성년 자녀를 격리 수용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이민자 집단은 11월 중간선거와 2020년 대선에 주목하고 있다. ‘스윙 스테이트’(경합주)를 지역구로 둔 정치인들이 제도 개선에 힘을 보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입국금지 행정명령 서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초 테러 위험국으로 간주되는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최소 90일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문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민서비스국, 강령에서 ‘이민자의 나라’ 문구 삭제

미국 이민서비스국(USCIS)은 지난 2월 조직 강령에서 ‘이민자의 나라’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기존 강령은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해 ‘이민자들의 나라’로서 미국의 약속을 보장한다”고 서술돼 있었지만, 새로운 규정에서는 “국가의 ‘합법적인 이민제도’를 관장한다”로 바꿨다. 주요 기능을 나타내는 표현이 ‘이민자의 나라’에서 ‘합법적인 이민제도 관장’으로 바뀐 것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기존 강령은 이민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기회의 땅인 미국에서의 기회를 보장한다는 의미로 읽혀 왔다. 이에 비해 새로운 강령은 합법적인 이민제도에 방점을 찍었다. 이민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불법체류자 신분은 보장받기 힘들다는 명시적인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는 이민서비스국의 기능이 이민 지원에서 이민 절차 규정을 검증하는 것으로 사실상 바뀌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6월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이후 지속적으로 강경 이민 자세를 보여왔다. 타깃은 주로 히스패닉과 무슬림(이슬람교도)이었다. 육로를 통한 히스패닉의 불법 입국을 저지하기 위해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주장해 왔으며, 3차례 행정명령을 통해 다수의 이슬람권 국적자에게는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이민자들 때문에 미국인의 권리가 침해된다’는 그의 주장은 일부 보수적 백인 주류사회의 구미에 맞는 공약이었다.
미국에 밀입국한 뒤 아버지와 생이별을 한 8세 소녀가 18일(현지시간)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샌드라 데이 오코너 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아버지를 찾아 달라며 울고 있다.
논란도 많았다.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 항목 반영과 이행을 놓고는 민주당과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백악관은 정쟁의 소용돌이에 진입했으며, 공화당에서도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 출범 초반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요청에도 예산 반응은 지지부진했다. 민주당은 장벽 건설을 실제 유용성이 아닌 지지자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행위로 인식하고,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나마 집권 초기 내놓았던 반이민 행정명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기의 성과를 안겼다. 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를 대상으로 삼은 반이민 행정명령은 반전을 거듭하다가 지난달 26일 연방대법원에서 최종 효력을 인정받았다. 보수적 색채가 짙어진 대법원의 인적 구성 변화 덕분이었다. 반이민 행정명령은 집권 직후 일부 국가 국적자들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하면서 진보적인 주정부의 소송에 노출됐지만, 두 차례 수정과 법적 공방을 거쳤다.
◆‘추방 유예 프로그램’ 대체 입법 난관… 선거 앞둔 정치권

다카 프로그램은 미국 내 이민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오바마 정부의 행정명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의회에 대체입법 마련을 요구하며 다카를 폐기했다. 이민자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다카 혜택을 받은 이들은 미국에 거주하는 부모와 친인척이 많다.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클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문에도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양당의 강경파와 온건파가 모두 만족하는 법안 도출이 힘든 배경이다.

지난 1월과 2월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 중지) 사태까지 야기하며 다카 대체입법 마련이 현안으로 대두했지만, 의회는 아직 성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공화당은 지도부의 중재안을 비롯해 몇 건의 대체법안을 하원 본회의에 상정했지만 안건을 처리하지 못했다. 중재안에는 다카 수혜자에게 장기적으로 시민권 취득 절차를 허용하는 한편 이민자 권리를 대폭 축소하는 법안 내용에 공화당 강경파와 민주당 모든 의원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한 6개월의 입법기간은 지난 3월 만료됐으며, 법원 결정으로 다카 수혜 대상자들은 당장의 추방은 면한 신세다.

정치권이 다카의 대체입법 마련에 나서는 모양새를 보이겠지만, 서로 상대의 양보를 주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화두를 제시하면서 상대의 의지가 빈약하다고 공격하며 정치적 득실을 잴 가능성이 짙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분석도 이런 진단에 힘을 보탠다. 폴리티코는 최근 유권자를 친인척으로 둔 다카 수혜 대상자 180만명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잠재적 대권후보들의 전략적 싸움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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