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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칼럼] 규제혁신과 공무원의 복지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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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01 21:06:56 수정 : 2018-07-01 17: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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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권 정책 집행 말단도 / 적폐 몰아 징계 행태에 충격 / 다음 정권 때 피해 볼까 우려 / 시키는 일들에 하는 척만 해 러시아 국빈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예정돼 있던 제2차 규제혁신점검회의를 불과 3시간 전에 전격 취소했다. 과로로 인한 감기몸살로 대통령이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서 취소된 것이어서 처음엔 대통령의 건강이 직접적 원인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이를 극구 부인하고 사실은 1차 회의에 비해 새로운 것이 없다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건의에 따라 대통령이 공직사회에 대한 경고를 위해 전격 취소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감기몸살에도 대통령은 규제혁신회의에 참석할 의사가 강했으나 이 총리의 건의에 ‘답답하다’는 탄식과 함께 회의 자체를 전격 취소했다는 것이다.

규제혁신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 중 핵심이다. 하반기 국회가 아직 원구성조차 이루지 못해 각종 규제혁신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회의의 전격 취소는 행정부 공무원이 대통령과 총리가 기대하는 수준의 규제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게다가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과 은산 분리에 관해 대통령과 총리께 사전 보고할 때에는 모두 만족스러운 의사를 표명했다가 갑자기 취소했다면서 이를 강력 반대하고 있는 모 시민단체가 이번 취소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한다. 겉으로 나타난 현상이 어떻든 대통령이 주재하고 모든 경제장관이 참석하기로 예정된 고위급 회의가 전격 취소됐다는 것은 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홍성걸 국민대 교수 행정정책학

청와대 설명대로라면 대통령이 강하게 질책할 정도로 공무원이 규제혁신에 소극적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공무원이 무능하다는 것인데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공무원이 무능해서 재탕 삼탕의 규제개혁 아이디어만 제시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 정책은 이미 제시했으나 정치적 이유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거나 실시조차 해보지 못한 것이 많아 ‘답답하다’고 할 정도로 진부한 정책이 제시됐다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결국 관계 공무원이 복지부동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나타난 현상이지 근본 원인이 될 수 없다. 더욱이 복지부동은 일반적으로 정권 말기에 공직기강이 해이해져 나타나는 현상이다. 무엇이 국정과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할 시기인 정권 초기에, 그것도 80%에 가까운 대통령 지지도가 1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무원을 복지부동하게 하였을까.

이 질문에 가장 개연성 높은 대답은 문재인정부의 잘못된 적폐청산일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부처별로 적폐청산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정권의 정책을 조사하고 뒤집어봐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정책을 적폐로 규정하고 그와 관련된 사람을 처벌하고 징계하고 있다. 특히 적폐청산의 방식이 제도와 관행의 청산이 아니라 인적 청산에 초점을 두면서 지난 9년간 정책집행에 참여했던 담당 공무원마저 징계에 회부하거나 고발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편찬 작업에 참여했던 공무원의 징계 회부가 대표적 사례다.

대다수 공무원에게 이러한 방식의 적폐청산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보다 분명하다. 정권이 하는 일에 나섰다가는 다음 정권에서 고발당하거나 징계당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합리적 행동은 정권이 시키는 일에 나서지 말거나 정 안 되면 나서는 척만 하는 것이다.

해당 시민단체 개입설도 복지부동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그 시민단체 출신들이 청와대를 구성하는 핵심 세력이고, 이들이 정책과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쳐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면 공무원의 입장에서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특정 시민단체의 영향력에 의해 규제개혁의 방향이 결정되고 구체적 정책 대안이 선택된다면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복지부동함으로써 특정 정권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남겨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답답함’을 일으킨 공무원의 복지부동은 결국 사람 위주의 적폐청산과 시민단체 출신 청와대 비서관들의 독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질책의 대상이 잘못됐다. 청와대는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 행정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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