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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라이프] 게임 개발 몰두했던 이단아… 블록체인 ‘혁명’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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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30 06:00:00 수정 : 2018-07-02 11: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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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보다 컴퓨터 게임이 좋았던 10대/ 기업 사장 지낸 父 “하고픈 것 해라”/ 중학생때 첫 상용 PC게임 만들어 팔아/ ‘지클런트’ ‘포가튼 사가’ 등 줄줄이 히트 공부하느니 노는 게 낫다? 지금 한국 교육 현실은 ‘한줄서기’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1%만이 승자, 99%는 패자가 되는 구조다. “차라리 노는 게 낫다.” 누군가 혀를 차며 말한다. 그러나 말뿐이다. 정작 자기 자녀에겐 그러지 못한다. 대열에서 이탈하는 건 더 두렵기 때문이다.

이상윤(47) 블룸테크놀로지 대표는 다르다. 그런 흐름에서 용감하게 벗어난 ‘이단아’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한다.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것”이라는 쿨한 철학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도권 교육이 미덥지 않아서다. “정해진 길로만 가라고 하니 점점 창의성이 사라진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이상윤 블룸테크놀로지 대표는 컴퓨터게임 개발 1세대다. 중학생 시절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근 40년을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CEO로 살아왔는데, 지금은 블록체인에 푹 빠져 산다.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다. 회사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대표. 블룸테크는 이 대표가 설립한 게임 개발회사, ‘판타그램’의 후신이다.
판교=하상윤 기자
이 대표 역시 그런 삶을 살아왔다. 제도권 교육이 정해 놓은 길로만 가지 않았다. 중고교 시절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빠져 살았다. 흔히 부모와의 갈등이 연상되는 대목이지만 이 대표의 경우는 달랐다. 중견기업 사장이던 그의 부친 역시 “네 인생, 네가 사는 거다”라며 오히려 격려했다.

일찌감치 성과는 나타났다. 이 대표는 이미 중학생 시절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돈을 벌었다. 고2때인 1988년 ‘대마성’이라는 한국 최초의 상용 컴퓨터게임을 만들어 팔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아예 ‘판타그램’이라는 게임 개발업체를 차렸다. “군 제대하기 전 마지막 휴가 때 나와 회사를 설립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명실공히 컴퓨터게임 개발 1세대다. 그 시절 만든 ‘지클런트’(Zyclunt. 1995. PC Windows용 횡스크롤 액션게임), ‘포가튼 사가’(Forgotten Saga. 1997. PC Windows용 롤플레잉 게임)는 모두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업계에서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게임들이다. 

그런데 10대 사춘기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눈떠 근 40년을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게임 개발업체 CEO(최고경영자)로 살아온 그가 요즘 푹 빠져 있는 것은 컴퓨터게임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인프라로 불리는 블록체인이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암호화폐)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은 정보를 감추기보다 참여자 모두에게 공개함으로써 오히려 보안성을 높인 역발상의 신기술이다. 그래서 블록체인은 혁명적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미들맨’(중개자) 없이 서로를 알지도, 믿지도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거래와 비즈니스를 가능케 한다. “거래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미들맨의 역할을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보다 안전하게 하는 세상이 온 것”(문영배 디지털금융연구소장)이다.

이 대표에게 그런 블록체인은 블루오션이자 새로운 승부처다. 이 대표는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뛰어넘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고 작년 10월 블룸테크놀로지(이하 블룸테크)를 출범시켰다. 20대에 만든 판타그램을 블록체인 기업으로 진화시킨 것이다. 최근 판교 테크노밸리에 둥지를 튼 블룸테크를 찾아 이 대표를 만났다. 블록체인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지, 이 대표는 자신만만했다. “기존의 것들과는 다른, 완전 실사용성이 있는 차세대 블록체인 플랫폼을 만들 것”이라고 이 대표는 말했다.

-완전 실사용성이 있는 블록체인 플랫폼이란 게 어떤 건가.

“비트코인은 구조를 보니 그저 블록체인을 테스트해본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2세대 비트코인인 이더리움을 보니 제대로 각을 잡았더라. 블록체인이 플랫폼으로 이렇게 발전하는구나, 싶더라. 그런데 이더리움도 베이스 자체가 비트코인과 다를 게 없다. 분산원장이 늘면, 참여자가 많아지면 속도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겠더라. 구조 자체를 설계할 때 숫자와 상관없이 만들어야, 그런 기술을 갖고 해야 블록체인 플랫폼이 완성된다고 봤다. 참여자가 얼마나 많아지든, 원장이 쌓여서 데이터량이 얼마나 커지든 느려지지 않고 늘어나는 원장을 원활히 처리할 수 있어야 제대로 플랫폼으로 쓰일 수 있다.”

-속도가 떨어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신용카드에 비유하면 결제했는데 3분 기다려도 이상하잖아. 그런데 이게 10분 넘게 걸린다. 비트코인은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느린 트랜잭션(처리) 속도 때문에 블록체인 시스템 외에 전통적인 결제시스템이 붙어서 억지로 결제케 한다. 이 때문에 해킹 위험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만드는 블록체인 플랫폼은 수초 안에 트랜잭션이 된다. 빠른 속도에 의해서 결제도 블록체인 시스템 메인넷 안에서 이뤄지게 된다.”

-‘숫자와 상관없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는 말인데, 게임 개발 이력과 관련이 있는 건가.

“우리가 만든 ‘킹덤언더파이어2’엔 수천명이 동시에 등장하는데 각자 움직임이 다르다. 이렇게 수천명이 각자 다른 움직임으로 연속성을 유지하는 게임은 처음이다. 탈중앙화한 분산 네트워크 기술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다각도로 이뤄져 가능했다. 동시에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를 분산처리해 정보 충돌을 막고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같은 분산처리 기술로 블록체인 플랫폼을 완성하겠다는 거다.”

‘킹덤언더파이어2’는 이 대표가 개발부문 대표, 프로듀서를 맡던 게임 개발업체, ‘블루사이드’가 만든 워게임이다. 제작비가 1000억원가량 들었다고 한다. 블루사이드 대표는 이 대표의 동갑내기 부인 김세정씨다.

-그래서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뭘 할 수 있는 건가.

“무궁무진하다. 석유거래 유통, 기부금 관리, 건강의료 인프라 등등. 예를 들어 우리와 MOA(Memorandum of Agreement·합의각서)를 맺은 모나코 다이아몬드 거래소의 경우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천문학적 변호사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성분, 구조, 무게, 깎인 각도에 따라 사람 지문처럼 고유한 지문이 생긴다. 이걸로 인증서를 만드는데 문제는 인증서를 위조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점이다. 이런 것들을 포함한 다이아몬드 보험사기 등 연간 다이아몬드 관련으로 지출하는 사건해결 비용이 엄청난 거다. 연간 50조원이나 된다고 하더라. 그 인증과 유통을 블록체인에서 하면 다이아몬드를 훔쳐도 팔 수가 없다. 블랙박스가 생기면서 택시 강도가 사라진 것과 같다.”

성과는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미 블룸테크가 맺은 MOA 및 계약서는 37건에 달하는데 모두 굵직굵직하다. 계약 상대방은 외국 정부이거나 공공기관, 에너지회사, 도시개발회사 등 굴지의 기업들이다. 광산이 많은 콩고 정부는 부동산과 광산 관리·유통에, 아프리카의 부국인 동쪽의 섬나라 모리셔스공화국은 국가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블룸테크의 블록체인 플랫폼을 쓰려고 한다. MOA는 어떤 내용에 대해 상대방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을 서약한 문서로 정식 계약과는 다르다.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 MOU(양해각서)보다는 한 단계 위다. 이 대표는 “계약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 대표가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은 아니다. 지금 거부가 된 것도 아니다. 최근까지 블루사이드는 재정난에 허덕였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7년에 걸쳐 개발한 킹덤언더파이어2의 중국 출시가 하루아침에 막혀 버린 영향이 컸다. 이 대표는 “작년 2월 말부터 6월까지 중국 신화통신서 컴퓨터 온라인게임 기대작 순위 1위를 했고, 중국 당국의 서비스 허가를 받았는데도 지금껏 중국시장에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 100억∼200억원의 매출은 문제없을 건데 그게 제로가 된 것”이라고 이 대표는 말했다.

게임업계는 살벌한 전장과 같다. 사드 여파로 그렇게 자금난이 오고 매출길이 막혔다고 하니 곧 망하기라도 할 듯 악성 루머가 돌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진원지는 경쟁업체였더라”고 이 대표는 말했다. 블루사이드는 지난 4월 중순 킹덤언더파이어2를 러시아 시장에 출시하면서 이제 겨우 숨통을 튼 상황이다.

위기를 극복하면 기회가 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에 인수됐던 판타그램이 2003년 다시 분리되면서였다. “직원은 50여명인데 통장 잔고는 2000만원, 부채는 150억원이었다. 주력개발게임인 ‘샤이닝로어’도 엔씨소프트로부터 찾아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 경우 투자업계에서는 ‘못 갚는다고 하고 만세 부를 것’으로 본다. 그런데 우리는 꿋꿋하게 차기작 게임들을 개발해 다 갚아버렸다.” 이 대표는 “그 일로 투자업계에서 큰 신뢰를 얻었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프라이빗세일 과정에서 안 좋은 소문도 돌았는데.(프라이빗세일은 블록체인 업체들이 초기 투자금을 모으는 과정이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으며 최소 투자금액이 높다.)

“지난 3월 코인지니어스라는 회사와 일정금액의 투자 및 블룸테크에서 개발하는 암호화폐의 프라이빗 세일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후 투자금의 일부는 납입이 되었으나 의무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협약이 해지됐고, 코인지니어스는 더 이상 프라이빗세일과는 관련이 없다. 안 좋은 소문들은 블룸테크와는 무관하게 코인지니어스에서 한 일들에 기인한다.”

-궁극적으로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뭔가.

“전 세계가 쓰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만들고자 한다. 한국 기업인으로서의 사명감도 있다. 지금 최첨단 IT(정보기술)기업들은 미국에 몰려 있지 않나. 와중에 중국시장이 커지고 중국도 그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가 그냥 이런 기술을 응용해서 내수시장으로 먹고 산다? 이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 뛰어난 실력을 갖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왜 아시아엔 구글도, 애플도 없나.”

포부가 광활하고 야심만만하다. 이 대표의 꿈은 실현될 것인가. 그가 만든 블록체인 플랫폼의 이름은 ‘로커스체인 (Locus Chain)’이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이상윤 대표는 △1971년 서울 출생 △한양대 수학과 중퇴(1996년) △NEWAGE Team 프로그래머(1987~1989년) △FM Work 리드 프로그래머(1990~1992년) △판타그램 대표이사 & 프로듀서(1994~2017년) △블루사이드 개발대표 & 프로듀서(2011∼현재) △블룸테크놀로지 대표이사(2017~현재) △포가튼사가(1997,PC), 신소프트웨어 상품대상 △킹덤언더파이어(2000,PC), 대한민국게임대상 우수상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2004, XBOX), 대한민국게임대상 대상(대통령상) △나인티나인나이츠(2006, Xbox360), 대한민국게임대상 우수상 및 기술 창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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