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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치마가 문제?"…계획적인 성범죄, 노출과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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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8 06:13:00 수정 : 2018-06-27 21: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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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여름철 성범죄의 진실①] 노출 및 계절성 등 상관도 분석 “그 여학생도 문제야.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니야!”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한 종편의 드라마에서 부장판사는 여고생 성추행 사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의감에 불타는 후배 판사는 “짧은 치마를 입은 피해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상한 짓을 하는 추행범이 문제”라고 정면으로 받아쳤다.

부장판사는 이에 “어디서 말대꾸야. 여학생이면 여학생답게 조신하게 입고 다녀야지.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야. 여자로 만들어지는 거지. 노력을 해야 여자다운 여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록 드라마의 한 장면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의 남성중심적인 구조에서 비롯된 뿌리깊은 성차별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단면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 일부 남성은 여름철 성범죄의 원인이 여성의 짧은 치마 탓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짧은 치마 등 노출이 심한 여름에 성범죄가 집중적으로 발생한다며 여성들이 몸가짐을 조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여름철에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는지, 또 노출이 과연 성범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봤다.

◆“짧은 치마 때문에 성범죄?” 성희롱 발언!

27일 홍대에서 만난 20대 여성 이모씨는 최근 남자친구와 큰 싸움을 했다. 여름철 몰카촬영 등 성범죄를 대비해 경찰이 집중단속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다 남자친구가 “짧은 치마 입으면 성범죄가 일어나니 긴 치마를 입으라”고 말해서다.

이씨는 “여름철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짧은 치마가 범죄의 원인이라고 하는 건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 바뀐것 아니느냐”고 따졌다. 그녀는 “그런 논리라면 TV에 나오는 짧은 치마를 입는 연예인들도 가해자들의 성범죄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여성들을 향해 짧은 치마가 성범죄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성희롱적 발언이고, 또 상황에 따라 인권침해적 요소도 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지난 3월 전북 지역 한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교사가 이슬람 사회와 문화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이슬람에서는 오래 전부터 여성의 지위가 다른 문화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며 “이는 여성이 신체를 많이 노출하면 남성들에게 성적 충동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코란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한 여학생의 짧은 교복 치마을 미니 스커트에 비유하며 “요즘 학생들이 이런 미니스커트나 짧은 옷을 입고 다니니까 성폭행이나 성희롱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했다.

해당 수업에서 지적된 여학생과 학부모는 교사의 발언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인권위에 진정했고, 인권위는 해당교사의 발언이 학생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해당 교사의 교육은 특정 종교에 대한 편견 및 선입견 등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며 “이는 종교에 대한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또 여학생에게 다수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짧은 치마’, ‘성폭행’, ‘성희롱’ 등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선 “교사의 잘못된 성 관념으로 인해 학생들이 수치심, 모욕감 등을 느꼈을 것이 명백한 만큼 언어적 성희롱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성범죄와 계절 상관성 판단 어려워...여름철 몰카범죄는 높아

흔히들 여름철 성범죄가 다른 계절보다 많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여성들이 무더운 날씨에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 성범죄가 발생한다는 논리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실제 경찰청은 매년 여름철 집중단속을 벌여 해수욕장과 지하철 등을 중심으로 성추행 및 몰카범을 잡고 있다. 이는 검거 및 발생건수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월별 성범죄 유형별 발생건수를 보면 성범죄는 2016년을 제외하고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전체 성범죄 발생건수는 최근 5년간 14만880건(연평균 2만8176건)이고, 유형별로는 강간·강제추행이 10만6714건(연평균 2만1343건)으로 가장 많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카메라 등 이용촬영은 2만6654건(연평균 5531건), 통신매체 이용 음란은 2600건(연평균 520건) 순이었다. 

여름철 노출과 가장 밀접한 2012년~2016년 여름철(6~8월) 카메라 등 이용촬영 발생건수 중 약 30%가 여름철에 발생했다. 즉 카메라를 통해 타인을 찍거나 이를 유포한 범죄는 여름이 다른 계절보다 7%정도 높은 수치를 보였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하철(대합실 포함)에서 발생한 강제추행 등 성범죄가 꾸준히 늘고 있다. 2014년 적발 건수는 832건이었는데 2015년 1058건, 2016년 1079건으로 증가했다.

결국 이러한 통계가 다른 계절과 동일한 검거 및 단속 조건에서 나온 것인지, 경찰의 집중단속 등 성과로 나온 것인지는 정확하게 판단할 방법이 없다. 또 과학적으로도 여름철 몰카 등 성추행 범죄가 증가한다는 이론이 나온 적도 없다.

◆대부분 성범죄는 계획적, 노출과 밀접성 떨어져

많은 남성들의 인식처럼 현장에서 여성의 짧은 치마나 늦은 귀가 등의 경우 가해자의 우발적 범죄가 일어난다고 믿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분석이다. 대부분의 성범죄는 계획적 범죄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하 형정원)이 서울과 인천의 전자발찌 부착자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새벽 시간 집에 있던 20대 여성을 계획적으로 노린 성범죄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짧은 치마, 짙은 화장과 생머리, 늦은 귀가 등 여성들의 외모와 행동 때문에 성범죄가 일어나기 쉽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은 연구결과다.

법무부 의뢰로 형정원이 발간한 보고서 ‘성범죄 원인 및 발생환경분석을 통한 성범죄자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는 2015년 8월부터 12월까지 피보호 관찰자 235명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이들 피보호 관찰자는 성폭행 또는 강제추행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법원으로부터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은 남성들로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124건,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 111건이다. 

특히 성범죄가 발생한 장소, 시간, 계획성 유무는 통상적인 인식을 크게 벗어난다. 우선 계획적 성범죄(84건ㆍ67.7%)가 우발적 범죄(40건ㆍ32.3%)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노출이 심한 옷차림 등을 보고 성충동을 참지 못한 가해자가 우발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많다는 통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 범행 장소가 피해자 주거지(45건ㆍ36.3%)인 경우가 공공장소(23건ㆍ18.6%)나 노상(10건ㆍ8.1%)인 경우보다 훨씬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는 우발적 범죄가 아닌 계획적 범죄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공공장소에서는 성폭행(11.7%)보다 강제추행 범죄(52.4%)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는 성폭행의 경우 범죄자가 사전에 피해자를 물색한 후 치밀한 계획을 짜고 범행에 옮겼다는 의미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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