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에 중국은 대표팀 빼고 나머지 모두가 갔다.” 중국중앙방송(CCTV) 앵커인 바이옌 쑹이 한 말인데 과장됐지만 틀린 말은 아닌 듯합니다. 이번 대회는 20개 협찬사 중 7곳이 중국 기업이고, 중국이 투자한 협찬비와 광고비를 합치면 무려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넘습니다. 이 때문에 그라운드 전광판이 중국어로 도배된 데다 중국팬 4만명도 러시아에 몰렸습니다. 중국팬 쳰 싱춘(52)은 “말은 통하진 않지만, 어딜 가나 중국어가 있어 월드컵의 진짜 주인이 된 기분”이라며 의기양양합니다. 자본이 잠식한 월드컵의 씁쓸한 단면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26 월드컵부터 본선 진출국을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린 점도 중국을 참가시켜 ‘물량 공세’의 혜택을 보겠다는 속셈이 큽니다.
주변 국가 내전에 자주 연루돼 골치인 이란과 세네갈, 국가경제 파탄에 고통 받는 이집트 사람들도 여기서만큼은 국기를 흔들며 한데 뭉칩니다. 한 러시아팬이 같은 조별리그 A조에 속한 이집트팬에게 “살라흐, 원 골(One goal)”이라고 소리칩니다. 러시아와의 2차전서 이집트 에이스인 무함마드 살라흐(26)가 분전했지만, 1-3으로 패한 것을 두고 놀리는 것이죠. 하지만 양국 팬들은 서로가 씩 웃고 맙니다. 마땅히 즐겨야 할 축제인 월드컵 앞에서 다툼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은 셈이죠.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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