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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는 정적도 대통령으로 만든 '킹메이커'였다

입력 : 2018-06-23 15:14:41 수정 : 2018-06-23 15: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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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 기획자…'영원한 2인자' 별칭
3당합당 통해 YS, DJP연합으로 DJ 대통령 만들기 기여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역대 주요 정치인 가운데 '킹메이커'라는 별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가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거나 가까이서 보좌한 대통령이 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 3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육사 8기 출신으로 중령이던 김 전 총리는 1961년 5월 16일 처삼촌인 당시 박정희 소장의 5·16 쿠데타를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5·16 쿠데타의 주역으로 꼽힌다.

당시 5·16 쿠데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내가 박정희 장군을 모시고 5·16을 기획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권력 1인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중앙정보부장, 민주공화당(공화당) 의장, 국무총리 등 박정희 정권에서 권부 요직을 두루 거치며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면서 5·16 쿠데타 세력도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지만, 김 전 총리만큼은 '부도옹'이었다. 1980년 그가 말한 '춘래불사춘'의 봄을 거치고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시기를 지나 신민주공화당 총재로서 다시 정치 일선에 뛰어든 것이다.

이때부터 김 전 총리의 정치적 변신도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과 '정적' 관계였던 김영삼(YS) 전 대통령, 김대중(DJ) 전 대통령과도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필요하면 언제든 손을 잡는 선택을 마다치 않았다. 한국 현대정치사에 크고 깊고 넓은 명암을 드리운 '3김(金) 시대'의 모습이었다.

김 전 총리는 먼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신민주공화당 총재 시절이던 1990년 1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를 만나 민정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을 선언하고, 그 결과물인 민주자유당(민자당)에 참여했다.

민자당은 1988년 총선을 거쳐 제1야당에 오른 평화민주당을 배제한 채 여당인 민정당이 영남, 충청을 각기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는 두 야당과 통합한 것이었다.

개헌정족 의석을 초과하는 이 거대여당의 출현은 총선 민의를 거스른 채 정당정치의 대퇴행을 가져왔고 '호남 고립-영남 패권'의 증오와 갈등 구도를 이후 오랫동안 지속시키는 '야합'이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총리는 바로 그 민자당의 최고위원에 올라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같은 당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1등 공신'이 됐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내각제 실시 등을 놓고 갈등했고, 결국 1995년 민자당을 탈당한 뒤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김 전 총리는 이 자민련을 이끌고 이듬해 총선에서 무려 50석을 얻는 성과를 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여전히 맹위를 떨친 지역 분할구도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김 전 총리가 충청권을 지지기반으로 해서 1인자로 도약할 꿈을 키울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일부에선 나왔다.

하지만 영, 호남에 견주어 세가 약한 충청권에 기반을 둔 김 전 총리는 1997년 대선에서도 결국 '킹메이커'를 택했다.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이른바 'DJP연합'을 형성한 것이다. 김대중 후보로 단일화를 한 것으로, 한국정치사의 가장 다이내믹한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물론, 김 전 총리 등 5·16 쿠데타 세력의 최대 정적일 뿐만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대척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잡자 보수 진영에선 김 전 총리에 대해 거센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P연합'을 밑거름으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김 전 총리는 김대중 정부의 공동 창업자 성격으로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DJP의 공동정부(연합정부)였다.

당시 김 전 총리는 대통령 보좌를 넘어 직접 국정 현안을 컨트롤하는 등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힘 있는 총리로 꼽히고 있다.

그렇지만 '처세의 달인'답게 김 전 총리는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원칙을 유지했다. 대통령중심제하에서의 총리 역할은 '델리키트'하다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김 전 총리는 내각제 개헌 등을 놓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갈등했고, 2001년 9월 김대중 정부와 결별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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