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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어찌하오리까"… 한반도 훈풍에 길잃은 국방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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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3 10:00:00 수정 : 2018-06-23 13: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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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상륙돌격장갑차가 해안을 향해 돌격하고 있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 제공
“1차선 일방통행로 한복판을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멈추니 뒤따라온 다른 차량들도 멈춰선 격이다.” 한 군 관계자가 국방개혁 2.0과 국방부의 움직임에 대해 기자에게 남긴 말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병력 중심의 비대한 한국군을 표범 같은 날쌘 군대로 만들겠다며 국방개혁 2.0을 지난해부터 야심차게 추진했다. 국방개혁 2.0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이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 10조원을 투입해 한국형 3축 체계(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 대량응징보복, 핵심위협긴급대응타격)를 구축하고, 공세적 작전개념 등을 수립해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이 추진되면서 한국형 3축 체계를 중심으로 한 국방개혁 2.0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국방부는 지난달에 이어 다음달 중 청와대와 2차 토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력증강이나 군 구조 개편 등 핵심과제를 확정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北 위협 줄어들자 방향 잃은 국방개혁

군 당국은 “남북 화해 분위기에 관계없이 군 전력증강은 현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군 안팎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국방개혁 2.0 확정이 늦어지면서 전력증강 계획 확정도 차질을 빚고 있다. 향후 5년 간의 군사력 건설 및 운영 청사진 역할을 하는 국방중기계획은 매년 4월쯤 발표된다. 지난해 4월 발표된 2018~2022 국방중기계획에는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 대비 방위력 개선에 78조2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국형 3축 체계를 핵심으로 한 국방개혁 2.0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2019~2023 국방중기계획 발표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지금쯤이면 내년에 발표할 2020~2024 국방중기계획 수립을 준비해야 할 시기”라며 “국방중기계획 확정이 늦어지면 전력증강과 국방연구개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방부가 추진중인 국방개혁 2.0은 남북 화해시대를 맞아 방향성 재정립이 요구되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예산 증액에 부정적인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부담스런 대목이다. 참여연대는 19일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중단 발표 뒤 논평을 내고 “정세에 맞지 않는 무리한 국방비 증액 요구는 수정되어야 하며, 국방정책 전반은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방개혁 2.0의 또다른 과제인 국방부 직할부대 조정도 공감대가 확산되지 않는 분위기다. 군 관계자는 “직할부대 관계자들이 토의를 거쳐 국방부에 의견을 제시해도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군 사법개혁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군 관계자는 “검찰, 경찰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의 업무 범위와 자율성을 확대하는 민간 사회와 달리 군 검찰이 헌병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의 군 사법개혁은 사정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추구하는 민간 추세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과거에 집행한 정책과 부적절한 사건에 대한 반성이나 문제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2010년대 초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차기전투기(F-X) 사업은 당초 미국 보잉 F-15SE가 선정됐으나 ‘정무적 판단’을 이유로 록히드마틴 F-35A로 바뀌었다.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수의계약방식인 대외군사판매(FMS)로 F-35A가 도입됐지만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 이전이 거부되고 군사통신위성 발사조차 지연되는 등 상당한 문제를 노출했다. 국익에 심각한 손실을 입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방위사업청은 2조원대 신형 해상초계기 사업에서도 F-35A 도입 당시와 동일한 FMS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려 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전직 국군정보사령부 간부들이 2013년부터 수년간 군사기밀을 해외에 팔아넘길 정도로 군 정보조직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으나 국방부는 “수사중인 사안”이라며 침묵하고 있다. 2008년 이명박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군 특수성을 고려치 않았다” “지휘권을 침해한다”며 2005~2006년 노무현정부가 추진했던 군 사법개혁을 무력화했던 국방부는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태도를 바꿔 10여년 전 노무현정부의 군 사법개혁안에 뿌리를 둔 개혁안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박근혜정부 시절 군 사법개혁 요구를 외면했던 것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군 패트리엇(PAC-3) 요격미사일이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공군 제공
◆軍 미래 이끌 전략도 전략가도 안보인다

지난해 한국형 3축 체계를 내세우며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던 국방부가 개혁 방향을 잃게 된 근본 원인은 한반도 안보환경 급변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기존의 군 전략과 전력증강 사업은 북한 위협을 토대로 진행됐다. 북한군 위협을 분석하고 그에 대응할 우리 군의 전략과 무기를 확보하면 그만이었다. 북한 위협이 심각할 때는 투자와 정책 기획 방향을 설정하는 기준이 적의 위협뿐이기 때문에 전략수립과 무기도입 업무가 쉬웠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 쉬웠던 국방비 증액도 국민들의 이해를 거쳐야 하지만 설득조차 쉽지 않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려면 국가안보에 필요한 능력과 미래 안보위협 요소를 파악하는 능력기반(capabilities based) 방식의 국방정책 기획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북한 위협에 근거해 업무를 해왔던 관성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은데다 미래 안보위협에 대응할 능력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난제를 단기간 내 해결하기는 어렵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미래 우리 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과 그 비전을 구현할 전략가다. 하지만 둘 다 찾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 군사강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군의 미래를 결정할 변곡점에서 미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전략가들이 출현해 군의 활로를 제시했다.

해군 특수전부대원들이 소말리아 아덴만 해상에서 사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해군 제공
19세기 말 미국이 해군력 증강을 놓고 고민할 때, 예비역 미국 해군 대령 알프레드 마한은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국가가 세계적으로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해양력 개념을 제시하며 미국 해군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1930년대 독일과 구소련 육군에선 하인츠 구데리안과 미하일 투하체프스키라는 걸출한 전략가가 기갑부대에 의한 전격전 개념을 주창, 전차전력 강화의 토대를 닦았다. 1960년대 이후 미국에도 로버트 맥나마라, 배리 골드워터, 윌리엄 니콜스, 도널드 럼스펠드 등 미래 미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제시한 인재들이 계속 배출돼 미국 군사력의 우위를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

50만여명의 대군을 수십년째 운용한 군사강국인 우리나라는 어떤가. 수많은 장교와 장군들을 배출했지만 이들이 한반도 실정에 맞게 우리 군이 나아가야 할 전략을 제시하는 전략가로 성장한 경우는 드물다. 그들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한미 동맹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에 취해 전략적 사고와 통찰력을 갖춘 군인을 키우고 그들이 전역한 뒤에도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소홀했던 군과 정부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가장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이 제기되고 북한 비핵화 조치도 가시화되면서, 수십년간 우리 군의 근간이었던 북한 위협 대응 기조가 무너지고 있다. 이를 대체할 비전을 군인들에게 빠르게 제시하면서 미래 국방력 건설을 준비해야 할 국방부의 대응은 굼뜨기만 하다.

선배 군인들이 한반도 안보환경 급변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군문을 떠난 지금, 이 모든 문제는 송 장관이 국방개혁 2.0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송 장관은 군사 선진국의 전략가들처럼 우리나라 안보가 나아갈 비전을 훌륭하게 제시한 인물로 남을 수 있을까. “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을 쉽게 찾을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군 소식통은 “과거 정책과 적폐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미래 안보환경 변화를 꿰뚫는 통찰력, 군 조직을 아우르는 포용적 리더십이 없다면 국방개혁 2.0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수많은 국방개혁안 중 하나로만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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