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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 조선과 러시아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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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3 00:00:27 수정 : 2018-06-23 00: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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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효종때 ‘나선정벌’ 악연 / 청 요구에 조선군 파견 ‘딜레마’ 2018년 6월 러시아 월드컵이 14일 개막해 열기가 뜨겁다. 9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한 한국 팀은 스웨덴과의 1차전에 이어, 멕시코·독일과의 일전을 러시아 여러 도시에서 벌일 예정이다. 러시아는 우리의 근현대사에 일본, 중국, 미국과 더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나라 중 하나지만 17세기 이전에는 별다른 접촉이 없었다. 조선과 러시아의 첫 만남은 17세기 중반에 있었다. 발단은 러시아와 국경 분쟁을 하고 있던 청의 조선군 파병 요구였다. 조선의 왕 효종은 고심 끝에 이들의 파병을 결정하고 수백 명의 조총 부대를 1654년, 1658년 두 차례에 걸쳐 길림 근처에 파병했다. 이 두 차례의 파병을 ‘나선(羅禪·러시아) 정벌’이라고 한다. 청을 공격 목표로 삼고 북벌(北伐)을 준비하고 있던 효종이 도리어 청의 출병 요구에 의해 조선군을 파병한 것은 당시의 정치적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나선정벌의 시작은 1654년 2월 청나라에 파견됐던 사신 한거원이 한양에 들어와 효종에게 청나라의 요구 사항을 보고한 것에서 시작한다. “조선에서 조창(鳥槍)을 잘 쏘는 사람 일백 명을 선발해 청나라 관리의 통솔을 받아 나선을 정벌하되 3월 10일 영고탑에 도착하라”는 것이었다. 당시까지 효종은 나선, 즉 러시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효종은 나선이 어떤 나라인지를 물었고, 한거원은 “영고탑 옆에 별종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나선입니다”라고 답했다. 효종은 북우후(北虞候) 변급(邊?)을 대장으로 삼은 조선군을 청나라로 파병했으니 이것을 1차 나선정벌이라 한다. 조선군은 흑룡강 부근 의란시 전투 등에서 청군과 연합해 승리를 거두고 1654년 7월 영고탑으로 귀환했다. ‘효종실록’에는 “변급이 청나라 군사와 함께 나선을 격파하고 영고탑으로 귀환했다”고 이날의 승전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1658년 러시아와 다시 국경 분쟁에 시달리자, 청나라는 조선군 파병을 재차 요청했다. 효종은 함경도 북병영의 부사령관 격인 병마우후(兵馬虞侯) 신유(申瀏)에게 조총군 200명과 초관(哨官) 60여명을 거느리고 러시아 정벌에 나서게 했다. 신유가 기록한 ‘북정록(北征錄)’에 의하면, 1658년 4월 6일 회령에서 군병을 검열하고, 4월부터 8월까지 약 4개월간 영고탑에서 사이호달(沙爾瑚達)이 이끄는 청나라 군대와 합류해 흑룡강으로 출정했다. 6월 10일 조청 연합군은 흑룡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스테파노프가 지휘하는 러시아 군사와 접전을 벌였다. 당시 러시아군의 모습에 대해서는 “적은 신장(身長)이 10척(尺)이나 되며 눈은 길고 깊으며, 털은 붉고 수염은 헝클어져 마치 해초가 어깨에 늘어진 것 같다”고 하여 외모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이 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군은 10여척의 배를 앞세우고 공격해 오는 러시아군에 총과 화전(火箭)으로 용감히 맞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스테파노프 포함 러시아군 270여명이 전사한 데 비해 조선군 희생자는 단 8명이었다. 신유 장군이 중심이 된 이 전투를 2차 나선정벌이라 한다. 1658년의 2차 나선정벌 이후 청과 러시아는 이후에도 몇 차례 전투를 더 수행하다가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흑룡강의 남북을 경계로 영토를 확정했다.

1654년과 1658년의 1차, 2차 나선정벌은 조선군이 러시아군을 상대해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 씁쓸함이 진하게 배어있는 승리였다. 북벌을 추진하던 왕 효종이 공격 목표인 나라 청나라의 요구에 응해 군대를 파견했기 때문이다. 북벌을 국가의 정책으로 삼고 야심차게 군비 증강에 나섰던 효종 시대의 나선정벌은 승리를 승리라고 부를 수 없는 묘한 상황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360년 전 조선과 러시아의 첫 만남은 전쟁이라는 악연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제 러시아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한국 팀이 러시아를 누비면서 경기에 임하고 있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커지기를 기대해 본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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