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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연의사람In]마지막 시간을 위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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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3 00:00:13 수정 : 2018-06-23 00: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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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선생은 비범한 사유와 깊은 통찰을 갖춘 예술가다. 선생은 20대에 이미 전설로 회자될 대표작을 발표해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급진적이고 완전한 성공은 이후의 삶의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Q선생은 동료나 선후배가 거둔 성취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관계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선생을 끝까지 인내할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선생에게는 타인과 소통할 재능이 없었다.

M여사는 오로지 축적한 부의 크기로 한 인간의 성공 여부를 평가해왔다. 물론 M여사 본인도 내 눈에는 엄청난 부자로 보였다. 다만 여사 스스로는 포만감을 갖지 못했다. 어디에 살고, 무슨 차를 타고, 무슨 브랜드를 휘감고 다니느냐로 누군가의 등급을 매기는 여사이긴 하지만 별 볼 일 없는 소설가의 ‘하찮은’ 재주를 고려해 그나마 가식이라도 떨 줄 알았다. “뭐,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이라고.

세상에는 또 다른 Q선생과 수많은 M여사가 있다. 어차피 세상은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사람과 나를 공감할 수 없는 사람이 한데 모여 엎치락뒤치락하는 곳이다. 살다 보니 단련이 됐다. 이해 불가능한 상대를 만나면 그저 소심하게 중얼거릴 뿐이다. “만약 내가 그보다 오래 산다면 그의 마지막을 볼 수 있어 좋으련만.”

사필귀정인가? 내게 옳고 그름을 심사할 권한은 없다. 꽁해서 퍼붓는 악담은 더욱 아니다. 나는 단지 궁금했다. 한 개인이 일생 견지한 가치관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형태로 완성되는지. 과연 자신의 삶이 성공적이었노라 긍정할 수 있을지. 그가 그 자신이어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그래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우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나는 그것이 알고 싶었을 따름이다. 소설가란 세상 속의 인간을, 모순투성이인 존재의 입체적 내면을 탐구하는 직업이 아니던가.

Q선생의 병환이 깊다는 소식이 들린다. 갑작스럽긴 해도 연배가 있는지라 놀라지는 않았다. M여사의 건강에도 큰 문제가 생겼다. 또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Q선생이든 M여사든 나든 그 누구든, 삶 속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굳이 외면하거나 회피하거나 먼 일처럼 여기고 있었을 뿐.

오늘이 내 남은 날의 시작인 것처럼, 오늘이 내 남은 날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관점의 전환은 왜 이다지도 어려운 것일까. 주어진 시간이 언제나 ‘지금 이 순간’뿐이라는 사실을 환기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 마지막 시간은 어떨까. 가장 궁금한 것은 그때의 내 모습이다.

정길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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