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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현실 외면한 ‘항공 부품 관세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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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1 21:27:48 수정 : 2018-06-21 21: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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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항공사 경쟁력이 떨어지고 외항사의 점유율이 급등할 것이다. 또 이로 인한 국적사와 정비·제조업의 동반 몰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중동 등 일부 국가의 노선 확대 압력과 덤핑 운임 공세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적사와 한국 항공산업계 관계자들은 몇 달 뒤 맞닥뜨려야 할 또 하나의 고민을 털어놨다.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되는 항공기 부품과 부수장비 무관세에 관한 얘기였다. 

나기천 산업부 차장
기획재정부는 2012년 관세법을 고쳤다. 이에 따라 현재 무관세로 들어오는 항공기 부품 등이 2019년부터 5년간 감면율이 20%씩 축소돼 2023년엔 관세가 100% 부과된다. 당시 정부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과 체결 협상을 했거나, 발효한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이었다. FTA에 따라 관세 면제나 감면이 가능하니 더는 면세 특례가 필요없다는 이유였다.

며칠 동안 항공업계와 한국항공협회 등 유관기관 의견을 들어보니 이 같은 정부의 결정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었다. 일단 FTA에 따른 면세 혜택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은 FTA 체결국에서 물품을 들여오면 원산지증명서를 요구한다. 하지만 항공기 부품 등을 파는 글로벌 체인에는 이런 증명서가 없다고 한다. 원산지증명을 요구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 거의 없으니 그런 문서 형태나 관리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명서를 요구하면 글로벌 제조사는 ‘우리가 거래하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새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항공기 부품 면세 혜택을 위한 FTA 활용률이 14% 수준에 그친 게 이 때문이다. 같은 기간 국내 전체산업 평균 FTA 활용률은 69.6%였다.

관세 감면을 연장해주면 가장 좋을 일이다. 그러나 기재부는 일부 기업에 특혜를 제공하는 관세 감면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에서 항공업이나 항공정비업이 ‘일부 기업’ 외엔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명분은 그럴싸하다.

대안은 또 있다. ‘항공기 부품과 부수장비 무관세 거래를 위한 협정’(TCA) 가입이다. TCA는 세계무역기구(WTO) 역내 협정으로, 현재 항공 선진국 중심으로 32개국이 가입해 있다. 그런데 이번엔 무역협정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내 항공제조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TCA에 가입할 수 없다고 버틴다. 이 또한 오해에서 비롯된 판단이다. TCA는 “회원국에 적용되는 보조금 협정 등을 확인한다”는 조항을 갖고 있지만, 이게 보조금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WTO 보고서를 보면 TCA에 가입한 여러 나라가 자국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 5개사의 항공기 부품 관세 감면액은 2654억원이다. 이제 이들은 내년부터 5년간 최대 4500억원의 관세를 내야 한다. 이는 정비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이 돈은 또 고스란히 항공기를 이용하는 국민의 운임 부담으로 전가된다. 나라에서 보조금을 받거나 부품 관세를 면제받은 외항사는 “이때다” 하고 더 싼 운임으로 한국 승객을 유치할 것이다. 한국 항공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 감면 연장이든 TCA 가입이든 정부의 전향적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나기천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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