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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 당당함 표현 노력… 감독이 ‘컷’ 외치면 그제야 눈물”

입력 : 2018-06-21 21:07:14 수정 : 2018-06-21 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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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개봉 ‘허스토리’의 김해숙 “한 많은 여인 역을 수없이 해봤지만 이번 인물은 도저히 그 아픔의 깊이를 상상할 수가 없었어요. 원래 시나리오를 여러 번 보면 캐릭터를 구체화할 수 있는데, ‘허스토리’는 열심히 읽으면 읽을수록 이분들이 겪은 마음을 0.0001%도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인데, 꼭 잘해내야 하는데… 너무 무서웠죠.”

27일 개봉하는 영화 ‘허스토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벌여 사상 처음 보상 판결을 받아낸 ‘관부재판’을 소재로 했다. ‘힘들고 불편한 이야기 만들지 말자’는 주변의 만류에도 영화를 완성한 민규동 감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로 통칭되는 할머니들 한명 한명의 인생에 다가가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배우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등 관록의 여배우들이 직접 재판에 참여한 위안부 할머니를, 김희애가 사재를 털어 할머니들의 재판을 지원한 문정숙 사장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간 왕성한 작품 활동에도 인터뷰를 잘 하지 않던 김해숙이 ‘허스토리’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에 나섰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어떤 작품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영화 ‘허스토리’에서 1992년 관부재판에 참여한 위안부 할머니 배정길을 연기한 배우 김해숙은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촬영을 할수록 자신감이 떨어졌지만 배우와 스태프 모두 한마음으로 서로 다독여가며 작업을 마쳤다”고 밝혔다.
준앤아이 제공
“실제 관부 재판에 참여했던 할머니들은 돌아가셨지만 아직 그 일을 겪은 분들이 남아 계시고, 그분들의 감정에 해가 되면 어쩌나 가장 걱정됐습니다. 이렇게 자신감이 떨어진 건 처음이었죠.”

재판을 다룬 영화이니만큼 재판 장면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할머니들은 한명씩 증언석에 앉아 소녀시절 겪은 범죄를 어제 일처럼 상세하게 고발하고 당당하게 일제 만행을 알린다. 김해숙이 연기한 배정길 할머니도 일본 재판부에 “사과를 하고 사람이 되라”고 호통친다.

“재판 장면을 찍으면서 울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할머니들이 재판정에 선 그 순간만큼은 굉장히 강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당신들이 준 아픔을 갖고도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걸 보여주며 떳떳하고, 주눅 들지 않고, 굴하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그러니 그 연세에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23번이나 재판을 하셨겠죠. 하지만 제 마음은 그렇지 못해서 감독님이 컷을 외치면 그제야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영화는 스토리 자체의 힘에 배우들의 진심을 실어 깊은 울림을 준다. 할머니를 연기한 배우들은 실제로도 동년배다. 촬영장에선 ‘동지애’로 똘똘 뭉쳤다.

“모두가 자기 재판 신을 촬영하고는 탈진할 정도로 온 힘을 다했습니다. 촬영장에선 서로 다른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어요. 오로지 영화에 집중했고, 서로 손을 잡아주고 다독이는 거로도 충분히 힘을 받았죠. 김희애씨는 물론이고 모든 배우와 스태프, 감독님의 마음이 저희와 같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낙천적’이라 말하는 그이지만 심적 부담이 마음속에 돌덩이로 굳어졌다. 촬영을 마친 뒤 우울감이 찾아왔다. 드라마 등 다른 일에 집중했지만 떨칠 수 없었다. “의사의 권유로 여행을 다녀온 뒤에야 털어버릴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1974년 MBC 공채탤런트로 데뷔한 김해숙은 셀 수 없이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음은 물론 환갑을 넘긴 지금도 작품 활동을 쉬지 않는다. ‘국민 엄마’ 타이틀을 지닌 배우 중 단연 ‘다작왕’으로 꼽힌다.

“엄마도 하나의 장르인 것 같아요. 세상에 수많은 직업이 있고, 각자 다른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다양한 엄마들이 있잖아요. 그걸 하나씩 다른 모습으로 찾아 보여드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헤어스타일이나 패션의 변화에도 신경을 많이 쓰죠. 삭발 빼고는 안 해본 헤어스타일이 없을 정도예요.”

드라마에서는 주로 절절한 모성애를 연기했지만 영화에서는 조금 더 다채로운 캐릭터를 그려왔다. 도둑들(2012)에서는 사기꾼, 암살(2015)에서는 독립운동을 돕는 카페 마담, 아가씨(2016)에서는 속을 알 수 없는 사사키 부인 등으로 강한 존재감을 뽐냈고, 지난해 천만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에서는 초강대왕으로 특별출연해 깨알 웃음을 주기도 했다.

“쉬지 않는 이유요? 제가 연기를 너무 좋아해서 그래요. 작품을 하나 끝내면 꼭 쉬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직 건강하고 열정이 많습니다. 운 좋게 많은 분이 찾아주고 사랑해주는 지금 일을 해야죠.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그래서 제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어요.”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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