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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빚 빠르게 늘어나도 견제세력 없어/ 무너진 재정, 미래 발목 잡는 ‘부메랑’ 될 것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금은 고인이 된 강봉균 전 장관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김대중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그는 당시 정치권의 포퓰리즘 공약에 맞서 결성된 ‘건전재정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더니 왜 대표직을 맡았냐”는 질문에 “밥이나 먹자고 만난 공직 후배들이 온통 나라 걱정이더라. 성장절벽이 다가오는데 재정은 무너지게 생겼으니 힘을 보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야당인 문재인 후보는 물론 여당인 박근혜 후보도 ‘복지국가론’을 내세우며 기초연금, 무상보육 등 복지 공약 경쟁을 한창 벌이던 때였다.

사실 복지 포퓰리즘 논쟁은 대선 1년 전 서울시의 무상급식 논란에서 촉발됐다. 서울시의회 다수당인 민주당 의원들과 진보 성향의 곽노현 교육감이 추진한 무상급식 조례안이 시의회를 통과하자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은 주민투표로 배수진을 쳤다. 결국 투표율 저조로 투표함 뚜껑도 열어보지 못한 채 시장직을 내놓고 박원순 서울시장 1기 시대를 열어줬다. 이후 선거 때마다 무상 논란이 이어졌다. 모든 이들에 공평하게 혜택을 주는 ‘보편적 복지’냐, 소득 계층별로 차등을 두는 ‘선별적 복지’냐는 복지 재정을 뒷받침할 증세 문제와 함께 여야 간 치열한 전선이 됐다.

황정미 편집인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무상교육, 아동수당, 청년수당, 기본소득 등 쟁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 정책이 한정된 나라 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래 세대에 지속가능한 정책인지를 놓고 앞으로 뜨거운 논전이 펼쳐질는지 의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싹쓸이로 끝난 6·13 지방선거를 보면 말이다. 중앙정부에 이어 지방정부를 장악하고 국회와 지방의회도 휩쓸었다. 나라살림, 지방 곳간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따져야 할 의회가 정부와 같은 편인데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겠나. 수십조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서울, 경기, 인천 광역의회에서 야당 소속 의원들은 교섭단체조차 꾸리지 못한다. 그런 지역이 17개 시·도 가운데 10곳이다. 서울시의 경우 의원 110명 가운데 자유한국당 소속은 6명(비례 3, 강남지역구 3)뿐이다. 소속 정당이 달랐던 오 시장과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 논란, 이재명 성남시장과 성남시의회의 ‘무상 교복’ 전쟁 같은 장면은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이미 국가재정은 ‘증세없는 복지’를 외친 박근혜정부에서 급속도로 나빠졌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6년 결산 기준 국가채무는 626조9000억원으로 박근혜정부 4년간 180조원가량 늘었다. 이명박정부 집권 5년간 누적 적자 99조원을 훌쩍 넘긴 수치다. 문재인정부 들어 그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일자리 창출, 복지비용, 의료 공공성을 강화한 ‘문재인 케어’ 등으로 향후 5년간 172조원의 재정적자(2017∼2021 국가재정운용계획)를 예고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후유증으로 일자리가 줄고 임금 소득이 떨어지자 세금으로 메꾸겠다고 나선 정부다.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대북지원 비용도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비용을 줄이겠다며 한·미 연합군사훈련까지 중단시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떠올리면 우리가 떠안을 안보·대북 지원 비용이 얼마나 늘어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세계 경제 흐름은 좋아진다는데 일자리, 수출, 투자 등 우리 경제 지표는 뒷걸음질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일자리는 못 늘리고 기업 투자, 잠재성장력만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쏟아지지만 선거에서 압승한 정부 여당이 유턴할 리 만무하다. 강 전 장관은 “90년대 초만 해도 국가채무비율이 60%대였던 일본이 200%를 넘기는 데 불과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여당은 공공연히 ‘20년 장기집권’을 거론한다. 견제해야 할 보수 야당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고, ‘감시 세력’이어야 할 시민단체는 정부 편을 든다. 싹쓸이의 부메랑이 어떤 미래로 돌아올지 불안하다. 곳간을 채우긴 어려워도 허무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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