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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드라마 한편을 보았다. 연속극이었는데 채널을 돌리다 ‘삶은 당신에게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는다’라는 다소 철학적인 부제가 눈길을 끌어 보게 됐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그때가 마지막회였다. 평소 그 드라마는 나의 호기심을 끌기도 했었다. 잘생긴 외모의 주인공은 감탄을 불러일으켰고, 미국에서 이미 크게 성공한 드라마라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 드라마는 꽤 인상 깊었다.

탄탄한 스토리와 빠른 전개, 살아있는 극중 캐릭터들은 그 드라마가 왜 성공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 대사가 방점을 찍을 만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젊은 가짜 변호사가 유능한 선배 변호사에게 왜 좋은 대학에 나오지도 않았고, 변호사 자격도 없는 자신을 파트너로 택했느냐는 질문에 너 같은 사람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다면 회사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선택했다는 대답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나는 그 대사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호세 카레라스와 플라시도 도밍고를 떠올렸다. 그 둘은 1980년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더불어 세계 3대 테너로 불리며 서로 정상을 겨뤘다. 카레라스와 도밍고의 고향은 서로 앙숙지간이었던 터라 둘 역시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지역 갈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카레라스가 백혈병에 걸렸는데, 당시로서는 완치가 꽤 어려운 병이었다. 그는 치료비로 가진 재산을 모두 쓰고도 부족해 한 백혈병재단의 지원을 받아야만 했다. 어렵게 병을 이겨낸 카레라스는 자신을 도와준 에르모사 백혈병재단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갔다가 진실을 알게 됐다. 그 재단은 바로 도밍고가 카레라스를 위해 설립한 재단이었는데, 도밍고는 카레라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끝까지 비밀로 부쳤던 것이다.

나중에 카레라스는 백혈병재단을 설립하기로 하고 기금 마련을 위해 세 명의 테너가 한 무대에 서는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었다. 무대에 함께 서서 열창하는 이 세 명의 합동공연은 지구촌 사람을 열광시켰다. 함께함으로써 그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과 박수를 받았고, 더 큰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구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동료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곳일수록 창의성과 업무 효율성이 높게 나왔다고 한다. 서로 견제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함께 문제점을 찾아보고 실현 가능한 것으로 발전시켜나갈 때 그 직장은 안정적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슬로바키아 왕 스바토플루크는 임종 직전 세 아들에게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보라고 했다. 하지만 하나를 부러뜨렸을 때는 쉽게 부러지던 것이 세 개를 묶자 아무도 부러뜨리지 못했다. 왕은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서로 힘을 합하면 무적의 힘을 갖게 되겠지만 서로 다투면 서로가 서로를 무너뜨리고 적에게 무릎 꿇게 될 것이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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