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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역사] (6월18∼24일) 워털루 ‘전투’ 아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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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17 20:11:29 수정 : 2018-06-17 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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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6월18일 벌어진 워털루 전투는 하루 만에, 아니 한나절 만에 끝났다. 그럼에도 많은 기록에는 곧잘 ‘워털루 전쟁’이라고 표기된다.

그것은 이 전투가 갖는 역사적 의미가 너무 커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선지 워털루 전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느낌도 든다.

2015년의 워털루 전투 200주년에는 ‘워털루 동전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벨기에는 워털루 전투 200주년을 기념하는 2·5유로 동전을 만든 것이다.

프랑스로서는 너무 약이 오를 일이었다.

워털루 전투 당시 벨기에는 연합군 측으로 참전했다고는 하나 대단한 전력도 아니었다. 사실은 당시 벨기에 자체가 네덜란드에 예속된 상태였다.

하필이면 오늘날 유럽연합(EU)의 수도이기도 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이 워털루 전투의 현장 부근인 것도 프랑스로서는 언짢은 일이다. EU 수도를 찾는 많은 관광객이 온 김에 워털루 전장까지 구경하게 돼서다.

프랑스인의 그러한 심기는 국내에서도 ‘빅토르 위고의 워털루 전투’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단행본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위고의 대표작 ‘레 미제라블’ 가운데서 워털루 전투 부분만 발췌한 것이다. 이 소설은 워털루 전투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862년 간행됐으나 위고는 천재 전략가 나폴레옹의 불운을 줄곧 탄식한다. “만일 그 전날 밤 비가 오지 않아서 땅이 축축하지만 않았더라도 나폴레옹의 장기인 포격이 제대로 위용을 발휘했으련만…”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워털루 전투의 현장 부근인 EU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역사의 힘겨루기에서는 그 승패가 엇갈리는 양상도 비친다. 워털루 전투의 대표적 승전국인 영국이 EU로부터 탈퇴하려 한 점이 그것이다.

물론 그것은 영국의 ‘탈퇴’지 ‘패퇴’는 아니다. 하지만 경제력에서 독일에 밀린 영국이 독·불이 주도하는 EU를 기피한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고 보면 그것도 ‘패퇴’ 같은 면이 있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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