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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발명가 여배우’ 헤디 라마의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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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15 21:13:20 수정 : 2018-06-15 21: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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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 톱스타 평판 뒤에 숨겨졌던 / 치열한 삶 영화 ‘밤쉘’서 재조명 / 편견 맞서 다양한 자아실현 노력 /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라” 외쳐 “나는 사람의 외모보다 두뇌에 더 관심이 많다.” 1940년대 할리우드에서 ‘가장 매혹적인 배우’ 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으며, 백설공주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었던 헤디 라마의 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밤쉘’은 미녀 영화배우이자 시대의 섹스 심벌로서가 아니라 과학자와 발명가로서 라마의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그리고 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아이콘 - 그녀의 영향력’ 섹션에도 초대된 바 있다.

라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선으로 어뢰를 조종하는 데 적용할 수 있는 ‘주파수 도약’ 기술을 발명했는데, 이는 오늘날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기술의 초석이 됐다. 특허까지 출원했지만 그의 발명은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그의 업적은 세간에 알려지게 됐고, 비로소 타계하기 3년 전인 1997년 전자프런티어재단의 개척자상을 수상했다. 사후인 2014년에는 국립발명가협회 명예의 전당에도 오르게 됐다. 2015년에는 ‘구글’에서 ‘헤디 라마 헌정 영상’을 발표하며 ‘헤디 라마가 없었다면 구글도 없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김용석 철학자

‘밤쉘’은 미녀 배우로서의 평판 뒤에 숨겨졌던 발명가의 면모를 재발견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에 그친다면 이 다큐 영화의 의미를 많이 축소하게 된다. 라마의 일생 저 깊은 곳에서 우리가 재발견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삶의 지난함과 보람 그리고 그 의미의 충만함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개인주의는 다양한 개인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이 있다. 이것은 개인주의의 외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라마가 치열하게 살았던 삶은 개인주의의 내적 차원을 보여준다. 한 개인의 내적 다양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적 다양성을 독립적으로 실현해가려고 노력한 과정이 그의 일생이었다. 매력적인 배우, 호기심 가득한 발명가 등은 그러한 다양성의 일부일 뿐이다. 이는 라마가 배우의 역할을 넘어 여러 번 영화 제작을 시도했으며, 공적 기금 마련에서도 능력을 보였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아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다. 라마 역시 다양한 자아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종종 마치 상표를 붙이듯이 개인에게 어떤 특별한 ‘딱지’를 붙이고자 한다.

‘밤쉘’을 보고 나서, 라마의 대표작 ‘삼손과 델릴라’(1949년)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고전은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말이 있다. 몇 번 보았어도 다시 새롭게 보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델릴라는 우리 고정관념 속의 여인이 아니다. 라마가 연기한 델릴라는 한 개인의 다양성 그 자체이다. 말괄량이 소녀에서 사랑에 빠진 청순한 여인으로, 사랑의 다른 얼굴인 증오에 불타서 복수를 치밀하게 계획하는 사람으로, 자책하며 괴로워하다가 결국 참회하며 희생하는 인간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도 라마는 한 개인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연기한 것이다. 델릴라의 관점에서 본 삼손의 이야기는 더욱 깊고 풍부해진다.

사람들은 다양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라마가 겪었듯이 수많은 난관과 방해에 직면하게 된다.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라마가 도벽이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풍자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세상은 종종 개인의 가치, 한 사람의 의미, 홀로 서려는 의지 등을 무시하고 괴롭힌다.

라마는 영화 속 인터뷰를 마치며 마음에 간직했던 말을 전한다. “사람들은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라. 당신이 좋은 일을 해도, 사람들은 당신이 어떤 이기적 목적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럼에도 좋은 일을 하라. 아주 큰 생각을 지닌 큰 사람은 아주 속이 좁은 작은 사람들에게 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크게 생각하라.”

김용석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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