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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식인 일기에 그려진 6·25전쟁 실상

입력 : 2018-06-16 03:00:00 수정 : 2018-06-15 19: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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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칠 지음/정병준(해제·편집)/창비/1만6000원
역사 앞에서/김성칠 지음/정병준(해제·편집)/창비/1만6000원

1913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김성칠은 1928년 대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민족적 현실을 자각한다. 이후 동맹휴학사건으로 1년간 구금됐다가 농사에 몰두한다. 일본에 유학했다가 일제가 만든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당대 최고직업 ‘조선금융조합연합’에 들어가 조합이사직까지 오른다. 1947년 서울대 사학과 전임강사로 있다가 1951년 6·25전쟁 통에 영천 고향집에 피란왔으나 괴한의 저격으로 서른아홉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전쟁 전문가인 이화여대 정병준 교수가 김성칠의 일기를 통해 6·25 당시를 돌아본 책이다. 정 교수는 “김성칠이 묘사한 6·25는 논문으로 쓰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당대 역사적 소용돌이를 명징하게 담고 있다”며 책 발간 이유를 밝혔다.

김성칠 일기에는 북한 점령 후와 남한 수복 후 상황이 자세히 적혀 있다. 북한 점령 하의 서울대는 좌익 교수와 학생들이 검열과 통제를 일상적으로 주도했다. 서울 수복 후 인민군 부역 혐의 조사가 또한 자행되었다. 미처 월북하지 못한 교수들은 부역 혐의로 처벌받아 지식인 사회는 망가졌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에 쳐들어 온 인민군에 대한 김성칠의 인상이다.

“그들(북한군)이 상냥하게 웃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적개심이 우러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유독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심이 적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어제 본 국군과 이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다르다면 그들의 복장이 약간 이색질 뿐, 왜 그 하나만이 우리 편이고 그 하나는 적으로 돌려야 한단 말이냐. 언제부터 그들 사이에 그렇듯 풀지 못할 원수가 맺히어 총검을 들고 죽음의 마당에서 서로 대하여야 하는 것이냐. 서로 얼싸안고 형이야 아우야 해야 할 처지에 있는 그들이 오늘날 누굴 위하여 무엇 때문에 싸우는 것이냐.”

김성칠의 일기에는 일부 감상적인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일기를 보면 인민군, 미군, 국군에 대한 ‘팩트’가 왜곡되어 있거나 덧칠해진 부분이 적지 않다. 김성칠의 글을 통해 당시 사실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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