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현장에선] 소통에 필요한 서술 시점은?

관련이슈 현장에선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8-06-14 21:03:04 수정 : 2018-06-15 00:10:5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인천 부평구는 요즘 특고압 전선 매설 공사를 놓고 시끄럽다. 수도권 서부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땅속에 총 23.4㎞ 길이에 걸쳐 34만5000V의 전력 케이블을 묻는 공사다. 문제가 된 건 부평구 삼산동을 지나는 구간이다.

지하 30∼50m 아래 전선을 묻는 다른 곳과 달리 유독 주택가와 학교 3곳이 몰려 있는 삼산동 구간에서만 7∼8m 깊이에 특고압을 묻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파트와 수평으로 2∼3m밖에 떨어지지 않은 매설구간도 있다. 더구나 여기에는 이미 15만4000V짜리 케이블이 묻혀 있다. 

윤지로 사회부 차장
불과 한 달 전에야 이런 공사가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은 “뭔가 숨길 게 있으니 주민에게 쉬쉬하고 공사를 진행한 것 아니겠느냐”며 부랴부랴 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응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인근 초등학교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고, 세계인의 이목이 북·미 간 ‘세기의 회담’에 집중된 12일 오전에도 부평구청 앞에서 피케팅 시위를 벌였다.

공사를 진행하는 한국전력은 주민 불안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15만4000V에 34만5000V를 더해도 전자파는 기준치의 0.9%밖에 안 나온다는 것이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송전선 지중화율이 90%에 이르는 서울은 1∼2m 깊이에 매설하는 게 대부분”이라며 “보통은 전깃줄을 땅에 묻어 달라고 민원이 들어오는데, 땅에 묻는다고 항의하는 건 전국에서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중화 송전선은 이격거리 기준도 없고 주민설명회 대상도 아니라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주민 반발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불안의 뿌리가 ‘소통의 부재’에 있기 때문이다. 규정이 이렇고, 다른 지역에서는 공사를 어떻게 하고, 전자파 기준이 어떻다는 식의 대답은 소설로 치면 ‘3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설령 주민 불안이 오해에서 비롯됐다 할지라도 그들의 심리를 헤아리지 않는 이런 자세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주민이 ‘기준도 못 믿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기준과 규정을 들먹여봐야 이해가 될 리 없다.

이런 식의 소통이 비단 지역 현안에 국한된 이야기일까. 라돈 침대 논란 초기 ‘국내 방사능 기준에 위배되지 않는다’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닷새 만에 입장을 바꿨다. 처음에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방사선량을 피폭 기준으로 잡아 수치가 낮은 줄 알았더니 호흡기로 들어오는 방사선량으로 기준을 바꾸니 위험하더란 얘기다.

‘매일 밤 7∼8시간씩 머리를 대고 자던 침대가 방사능을 뿜었다’는 소비자들의 충격을 먼저 헤아렸다면 하지 않았을 실수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때도 그랬다. 환경부는 사건 발생 초기 살균제 피해는 환경성질환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피해자 지원은 정부가 아닌 기업 책임이라고 했다. 사안이 크든 작든, 정권이 보수든 진보든 정부와 공공기관은 늘 관찰자를 자처했다. 피해에 공감하고 함께 해결하는 주인공 같은 자세가 아쉽다.

윤지로 사회부 차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