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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사법과 정치는 멀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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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14 01:14:24 수정 : 2018-06-14 01: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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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거래’ 의혹 사법부 대응 실망 / 어떤 결론을 내도 후폭풍 불가피 / 법원 내 진보·보수파 갈등 큰 숙제 / 국민 신뢰 잃은 사법부는 모래성 법조 기자와 사회부장을 지내서 그런지 평소 주변 사람들로 부터 “법원과 검찰 중에서 어디가 덜 정치적이고 신뢰할 만한가?”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때마다 별다른 고민 없이 법원의 손을 들어주곤 했다. 검찰은 정치적 편향성이 심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사건 처리가 많았던 탓이다. 상대적으로 사법부는 일부 판사의 개인적 일탈행위를 제외하곤 조직 차원에서 문제가 된 경우는 적다고 생각해 왔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자만의 늪에 빠지므로 공적 평가를 받아야 하며, 최종 판결을 내리는 연방대법원은 다른 법원보다 더욱 엄정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장을 지낸 워런 버거의 말이다. 사법부는 그동안 사법권 독립이라는 명분하에 그 누구로부터도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누려 왔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정치권은 물론 언론도 사법부 비판은 가급적 자제해 온 것이다.

채희창 논설위원
하지만 이 같은 ‘편견’을 접어야 할 것 같다. ‘사법행정권 남용·재판거래 의혹’ 사태에서 일선 판사부터 대법관, 대법원장까지 사법부가 보여준 행태는 실망스러웠다. 사법부는 반으로 쪼개진 채 자정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소장 판사들은 팩트와 의혹을 구분하지 않고 ‘여론몰이’에 몰두했고, 대법관들은 대법원 판결이 불신받는데도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자신이 직접 일을 맡긴 특별조사단 판단을 무시해 내분을 자초했다.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대법정에 난입, 시위를 벌이는 사상 초유의 일마저 일어났다.

우리 사회는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수많은 갈등이 사법부로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논리와 연결짓는 재판이 많아져 사법부마저 이념·세대 간 갈등과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일선 판사가 “재판이 곧 정치…”라고 주장하고, 판결문에 “국가는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로 안보 우려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라는 대목이 담기는 지경이다. ‘사법의 정치화’는 위험하다. 사법부는 갈등과 분쟁 해결의 최종 절차이기 때문이다. 사법마저 정치화하면 사법부 독립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우리 헌법체계를 위험하게 만든다.

김 대법원장은 그제 대법관 간담회를 끝으로 법원 안팎의 의견 수렴을 마무리했다. 이제 결단만 남았다. ‘사법부 자체 해결’과 ‘대법원 차원의 검찰 고발’을 놓고 선택해야 한다. 검찰 고발을 하지 않는다면 ‘시민단체 등의 고소·고발에 따른 검찰 수사에 협조해 영장을 발부할지’ 또는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해도 상당한 후폭풍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일부 ‘강경파’ 판사가 대법원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법원 내 보수·진보 판사들의 갈등, 세대 간 갈등이 상당히 크다는 것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민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사법의 정치화다. 김 대법원장은 인사청문회 당시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편향된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전혀 없다”며 사법부 독립과 공정한 재판을 약속했다. 하지만 일부이긴 해도 법정을 정치무대로 보는 판사들이 사법부 내 신(新)주류로 인식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적폐청산, 사법개혁이란 이름으로 사법부가 정치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사법부는 벼랑 끝에 놓여 있다. 사법부 신뢰 추락은 매우 우려스러울 정도다. 얼마 전 국민의 64%가 ‘사법부 판결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선 법원을 신뢰한다는 비율이 2013년 41.0%에서 2016년 29.8%로 떨어졌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사법부는 모래성이나 다름없다. 판사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대법원장은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헌법기관 책임자로서 ‘견제와 균형’이란 삼권분립의 상징이다. 사법부 독립을 지키는 파수꾼이 돼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은 배제하고 말이다. 사법과 정치의 거리가 멀수록 국민에게 좋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에게 ‘솔로몬의 해법’을 기대한다.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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