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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평화 향한 첫걸음 뗐지만 갈 길 먼 북한 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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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13 00:02:55 수정 : 2018-06-13 00: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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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관계 정상화 등 4개항 합의/CVID 빠져 알맹이 없는 합의 지적/구체적 이행조치·시한 명시 안 해/핵 포기해야 北 ‘번영의 미래’ 보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어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한반도 평화를 향한 첫걸음을 뗐다. 북·미 정상이 처음 마주 앉은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6·25전쟁 이후 68년간 대결 국면을 이어온 북·미가 냉전의 고리를 끊는 작업이 시작된 까닭이다.

두 정상은 140분에 걸친 단독·확대 정상회담 끝에 공동성명을 내놨다. 공동성명에는 북·미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6·25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 등 4개항이 담겼다. 성명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체제 안전보장을 약속했으며,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그의 확고한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이 맞교환된 것이다.

아쉽게도 당초 기대했던 빅딜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기대 이상이었다. 환상적이었다”고 자평했지만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핵심 의제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성명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명에는 “2018년 4월27일 남북한 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을 뿐이다. CVID에서 철저한 검증을 뜻하는 ‘V’가 빠져 ‘속 빈 강정’이 되고 말았다.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판문점 선언과의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북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 포기를 공약했다’는 2005년 9·19 공동성명보다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도 있다.

성명에는 북핵 폐기를 뜻하는 ‘북한 비핵화’ 대신에 ‘한반도 비핵화’란 문구가 들어갔다. 이 표현은 북한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축소’를 거론할 때 자주 써온 용어다. 더구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와 시한,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폐기 등은 언급조차 되지 못했다. 어제 합의는 “CVID가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결과”라고 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그제 기자회견 발언이 공수표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실무협상을 벌였으나 막판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찰과 검증은 앞으로 북·미 간에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되는 사안이다. 폼페이오 장관과 북한 고위 당국자는 최대한 이른 시기에 후속 회담을 열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국제사회가 포함된 많은 인력을 투입해 북한의 비핵화를 검증할 것”이라고 했다. 확실한 이행장치가 마련되지 못하면 합의문은 휴지조각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 북·미 제네바협상 등 합의를 해놓고도 이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수포로 돌아간 적이 많다. 핵무기와 관련 시설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북한 비핵화 시간표를 구체적으로 짜고 검증 장치를 세밀하게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김 위원장은 어제 회담에 앞서 “우리한테는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이 때로는 눈과 귀를 가렸다”면서 “우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에는 “세계는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북·미가 평화의 시대를 여는 일은 양국 모두 가보지 않은 미증유의 길이다. 그런 만큼 과거 증오의 고리를 끊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 불신과 적대의 마음으로 밝은 미래를 맞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북한 매체들이 강조한 ‘달라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다.

김 위원장은 그제 밤 싱가포르 명소를 돌아보고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전망대에 올라 시내 야경을 보고는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싱가포르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들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 길은 하나뿐이다. 어제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다. 핵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는 ‘정의의 보검’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적당히 핵탄두를 숨기고 사찰과 검증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속임수로 핵을 개발해온 지난 25년의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북한에는 미래가 없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거짓에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고 주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그것이 김 위원장이 말한 ‘중대한 변화’일 리가 없다.

북한이 살길은 공동성명에 약속한 대로 비핵화를 확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평화를 선택하는 정상국가의 길을 걷는다면 북한에는 번영의 길이 활짝 열린다. 세계는 그런 북한의 선택을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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