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국정운영은 11살 아이와 같다.” 야인이 된 배넌은 독설을 퍼붓는다.
강호원 논설위원 |
2차 대전 후 세계질서를 이끌어온 G7 동맹체제.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를 끼워 G8을 만들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았던가. 미국과 유럽연합(EU) 사이에 타오르는 무역전쟁의 불이 꺼질 리 만무하다. 유럽산 철강제품에 25% 관세를 매긴 미국을 향해 EU도 보복에 나섰다. 7월부터 미국산 청바지, 오렌지, 오토바이에 똑같은 세율의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이끄는 기관차는 덜컥거린다.
미·중 사이도 깨진 항아리 같다. 미국이 중국산 첨단제품 1300여개에 관세폭탄을 물리지 않기로 한 것을 번복한 뒤 갈등은 도화선처럼 타들어 간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타산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트럼프 대통령. 오늘의 말이 어제와 다르다. 상인 기질 때문일까. 아니다. 신용을 중시하는 거상(巨商)은 수없이 많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기치를 내건 보호무역주의. 한 꺼풀만 벗겨 보면 ‘불신의 재생산’ 고리다.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을 잃으면 설 수 없다’는 공자의 말은 딴 세상 언어다. 무신이립(無信而立). ‘믿음을 버려야 일어설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걸까.
싱가포르 북·미 회담. ‘세기의 핵 담판’이라고들 한다. 좋은 결과가 나올까. 전도는 예측하기 힘들다. 시시각각 말과 행동이 바뀌니 예측이 무의미하다. “전에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다.” 북한을 두고 한 말이다. 이제 180도 바뀌었다. 백악관에서 북한 김영철을 칙사 대접한 뒤에는 이런 말을 했다. “김정은을 백악관에 초대하겠다”, “한국전쟁 종전 합의에 서명할 수도 있다.” ‘완전한 비핵화’의 희망이라도 본 걸까.
걱정은 미국에서 쏟아진다. “주한미군을 덜컥 철수하는 것 아니냐.” 오죽하면 미 의회가 주한미군을 2만2000명 아래로 줄이지 못하도록 국방수권법안을 만들었을까. 불신이 깔려 있다.
문득 드는 생각. 김정은은 트럼프를 믿을까, 트럼프는 김정은을 믿을까. 믿지 못한다면? 칼을 버리기 힘들다. 세기의 담판? 정치 이벤트의 그림자가 더 어른거린다.
불신은 혼돈을 부른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의 말, “국제질서가 도전에 직면한 것은 놀랍게도 이를 설계하고 보증하던 미국 때문이다.” 세계경제의 앞날은 바위를 구르는 달걀로 변했다. 한반도 정세도 똑같다.
불신의 시대, 혼돈의 시대. 어떤 법칙이 지배할까. 믿음도, 규칙도 없는 정글의 법이 난무한다.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먹잇감으로 변한다. 이 나라의 지도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순진한 망상’에 젖은 것은 아닐까. ‘영정이치원(寧靜以致遠)’. 깊이 생각해 형국의 끝을 꿰뚫어 보라는 제갈공명의 말이다. 끝을 내다보지 못하는 자는 어찌될까. 망한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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