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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학개론] (14) "뭐 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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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09 13:00:00 수정 : 2018-06-08 21: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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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캡처

준영(NA): 왜, 나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더 상대를 사랑하는 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을까? 내가 이렇게 달려오면 되는데, 뛰어오는 저 남자를 그냥 믿음 되는데, 무엇이 두려웠을까?
  
지오:(준영을 향해 헉헉대면서 뛰어오며) 니가 오람… 내가 갈 건데… 뭐 하러… 내가 갈 건데…
  
오랜 시간 나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명장면이다. KBS 2TV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준영(송혜교 분·사진 오른쪽)이 바쁜 촬영 스케줄을 틈타 만나러 오자 지오(현빈 분·사진 왼쪽)는 자신이 가면 되는데 뭐 하러 여기까지 왔느냐면서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온다. 그 모습을 보고 준영은 위와 같이 내레이션을 한다.
  
결혼을 하면 자주 싸운다. 당연하지 않을까. 30년 가까이 따로 살던 이들이 사랑이라는 이유로 길게는 몇년, 짧게는 몇개월 사귀다가 덜컥 결혼이라는 걸 하면서 한집에 사는데 조용히 아무 일도 없이 살면 어쩌면 그게 더 이상할 수도 있다. 가끔 TV에 나와 한번도 안 싸웠다고 하는 부부를 보면 그저 존경할 따름이다.
  
결혼을 하고 정말 엄청나게 싸웠다. 내가 좋아해서, 사랑해서 결혼한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심하게 부딪혔다. 연애 기간이 짧았던 것도 아니다. 5년 가까이 만났는데, 분명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는데, 오늘도 싸우고, 어제도 싸우고, 그저께도 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분명 내가 잘못해서 싸웠는데 그날따라 사과가 하기 싫었다. ‘사과’를 하면 내가 지는 것만 같은 생각이 괜히 들었던 탓이다. 그럴 때 있지 않나. 다 알지만 하기 싫을 때 그날이 딱 그랬다. 박박 우기고 우기다 결국 공대 출신 남편의 논리력에 밑천이 바닥난 나는 그냥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어! 그 말이 그렇게 듣고 싶으냐?”
 
이건 정말 내 심장 저 끝에서 나온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그냥 한번쯤은 져주는 것도 미덕이고, 그게 부부고, 그게 사랑 아닌가? 한번쯤은 그냥 넘어가 주는 것도 난 사랑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공대 남편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였다.
  
어느 날 집안에 평화의 물결이 잠시 일었을 때 난 말을 꺼냈다. “그렇게 내가 날 이겨 먹어야겠느냐”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그건 사랑이고, 아니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잘못은 잘못이고, 사랑은 사랑이지. 그렇다고 내가 널 덜 사랑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래! 날 덜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구나! 믿어보자.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이선균. '나의 아저씨' 캡처

거의 매일 밤 ‘내일 들어오는’ 공대 남편은 집 근처에 도착하며 전화를 한다.
  
“뭐 사갈까?”
 
난 정확히 0.3초간 생각한다. 이 시간에 뭘 사오라고 하면 좋을까.
  
“떡볶이!”
 
“어~~ 지금 12시가 넘어서 떡볶이집이 문 연 곳이 없는 것 같은데… 다른 건 안 될까?”
 
평정심을 잃지 않고 단호하게 난 말했다.
  
“떡볶이!”

“아~~ 알았어!”
 
늦은 밤 온 동네를 뒤져 떡볶이를 사 온 공대 남편, 그가 날 사랑하는 방법이다.

이윤영 방송작가  blog.naver.com/rosa0509, bruch.co.kr/@rosa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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