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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北 '한미동맹 흔들기' 공세, 정부는 '땜질 처방' 급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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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09 10:00:00 수정 : 2018-06-08 21: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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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군 스텔스 전투기 F-22가 지난해 12월 5일 광주 제1전투비행단 활주로를 이륙하고 있다. 당시 F-22는 한미 연합 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한반도에 전개했다. 공군 제공
“군사는 정치에 예속된다.” 동서양의 군사학에서 강조하는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통하지 않는 원칙이기도 하다. 남북 정치지도자들이 좋은 뜻을 갖고 화해협력을 추진하다 안보문제에 발목이 잡히면서 남북관계가 냉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가 군사에 예속되는 남북관계의 고질적 약점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원인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두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핵개발과 한미 연합훈련이라는 군사적 이슈에 매몰됐던 남북관계는 서서히 정치의 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도발의 아이콘이라 불릴 정도로 무력에 의한 문제 해결을 추구했던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총정치국장, 인민무력상, 총참모장을 교체하고 한미 연합훈련 비난을 지속하는 등 포스트 비핵화 국면에서 공세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한미 연합훈련 비난과 어깃장을 통한 북한의 한반도 정세 주도권 장악 시도에 맞서 정치, 군사 분야 모두 체계적인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북한군 장병들이 2017년 4월 15일 태양절 기념 열병식에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화도 대결도 문제없다”…내부 정비 한창인 北

북한은 지난 4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회의를 열어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새 전략목표를 제시했다. 지난달 17일에는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1차 확대회의를 열어 군 수뇌부를 물갈이하는 등 후속조치에 나섰다.

군을 정치적으로 지도하는 총정치국과 보급 및 인사 업무를 수행하는 인민무력성의 수장을 교체한 것은 군의 자원을 경제 건설에 적극 투입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제건설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조직 중 독자적인 보급능력과 기술력, 인력, 장비를 갖고 있는 조직은 군대뿐이다.

신임 총정치국장인 김수길은 총정치국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2014년 4월부터 최근까지 평양시 당위원장을 지내며 미래과학자거리와 여명거리 건설에 참여했다. 노광철 신임 인민무력상도 인민무력성 제1부상을 지냈다. 군의 인적, 물적 자원을 어떻게 동원해야하는지 잘 아는 인물들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작전을 맡는 총참모부의 수장에 리영길이 임명된 것은 비핵화 국면에서 대남 군사전략을 가다듬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리영길은 군단장을 거쳐 2013년 총참모부 작전국장, 총참모장을 지냈으며 리명수가 총참모장에 임명되자 작전총국장과 제1부총참모장을 맡아온 작전통이다.

북한 매체가 당 중앙군사위원회 결과를 보도하면서 “국가방위사업전반에서 개선을 가져오기 위한 일련의 조직적 대책들이 토의 결정되었다”고 밝힌 것으로 볼 때 기존과는 다른 군사전략 구상에 착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미 육군 장병들이 2016년 3월 16일 연합훈련 과정에서 81mm 박격포를 함께 발사하고 있다. 미국 육군 제공
여기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전쟁기술의 평등화다. 세계적 석학인 피터 싱어가 저서 ‘하이테크 전쟁’에서 제시한 이 개념에 따르면, 비대칭 전쟁에서는 강대국이 유리하지 않다. 재래식 군사력 증강이 어려운 북한으로서는 비대칭 전쟁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대목이다.

북한이 시도할 비대칭 전쟁 중 가장 유력한 것이 정보통신기술에 기반한 위성항법장치(GPS) 전파교란을 포함하는 전자전이나 사이버전이다. 2만km 상공에서 전송되는 GPS 신호는 지상에 도달하면 휴대폰의 100분의 1로 매우 미약하게 수신돼 저출력 교란으로도 GPS 위치 오차를 유발할 수 있다. 북한은 2010~2016년 4차례에 걸쳐 GPS 전파교란을 실시해 기지국과 항공기, 선박 등에 5352건의 피해를 입혔다. 북한은 수쳔여명의 해커들을 양성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킹을 지속하면서 기밀 탈취, 가상화폐 절도, 금융망 교란 등 각종 범죄행위를 벌이고 있다.

2014년부터 진행중인 우크라이나 내전에 공공연히 개입한 러시아의 사례도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강력한 전자전와 사이버전을 실시,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다양한 병종으로 구성된 친러시아 반군과 외국 용병들은 전투단을 구성, 정부군을 쉽게 격퇴할 수 있었다. 상당한 수준의 정보통신기술과 특수전부대를 보유한 북한으로서는 전자전, 사이버전과 특수전을 결합한 비대칭 전쟁인 배합전을 앞세워 한국을 마비시키는 전략을 구상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 B-1B가 지난 4월 8일 기지를 이륙하고 있다. 미국 공군 제공
◆北 ‘한미 연합훈련 흔들기’…軍 ‘대응 미숙’

북한이 당 중심 영도체계를 확립하면서 경제건설과 대남 군사전략 정비에 나서는 동안 우리측은 한미 연합훈련을 지렛대 삼은 북한의 공세에 체계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이 발표된 뒤 5월 11~25일 한미 연합 공중훈련 맥스선더(Max Thunder)가 예정대로 진행됐다. 한미 연합훈련은 대체로 훈련 개시 6개월~1년 전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군사행동을 취하는 미군의 특성 때문에 훈련 시작 시점이 임박하면 조정이나 취소가 어렵다. 군 당국은 공식 언급을 하지 않는 로키(Low-Key) 기조를 유지했으나 북한은 이를 빌미로 남북고위급회담을 무기 연기해버렸다. 맥스 선더 훈련 개시를 전후로 북한이 반발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연례적이고 방어적인 훈련을 북한이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했으나 이같은 낙관이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우리측은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고위급회담 재개 돌파구를 마련했지만 북한은 오는 8월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비난하면서 우리측을 또다시 압박하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을 이용한 북한의 ‘판 흔들기’는 정부와 군을 딜레마에 빠뜨린다. 내년 한미 연합훈련은 지금부터 협의하면 일정과 규모, 성격을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UFG 훈련 등 올해 예정된 훈련은 기존 계획대로 실시해야 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인 UFG 훈련은 어찌어찌 넘어가더라도 UFG 훈련을 전후로 핵추진 잠수함을 비롯한 미국 해군과 공군전력이 참가한 연합훈련이 이뤄지면 북한은 이를 빌미로 남북 대화를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부정적인 시각을 지닌 세력은 북한의 어깃장에 힘입어 목소리를 높이고, 이는 한미 동맹의 기반인 국민 여론의 지지를 약화시킨다. 그렇다고 훈련을 취소하거나 연기할 경우 한미 동맹 약화 논란을 자초해 국론이 분열될 우려가 있다. 말 그대로 딜레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2일 싱가포르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마치고 함께 이동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한미 연합훈련 성격 조정 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우려도 제기된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한미 연합훈련은 규모가 커지고 공세적 성격이 강해졌다. 한국군은 한미 연합훈련을 한반도에 국한된 성격으로 바라보나, 미군은 대(對)중국 견제를 위한 동북아시아 전략을 함께 고려한다.

한미 연합훈련 딜레마에 빠진 미 군 당국이 내놓은 것이 로키(Low-Key)다. 연합훈련이나 미군 전략무기 전개는 진행하되 홍보는 안하겠다는 것이다.

알리지 않으면 국민들은 모른다는 게 군의 설명이지만, 우리 국민과 북한을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맥스 선더에 미국 공군 스텔스 전투기 F-22가 참가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민간인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공개하면서부터였다. 우리 해군과 공군기지들은 민간인 거주지역과 인접해 있어 미군 전력 전개를 숨길 수 없다. 북한은 자체 레이더망과 첩보망 등을 통해 미군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 여부를 파악, 공개하고 있다. 북한이 침묵해도 한반도 정세에 관심이 많은 외신들이 한미 연합훈련을 보도하면 로키 기조는 무용지물이 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로키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로키 기조를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는 지난 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 직후 “한미 연합훈련을 로키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홍보하지 말자는 것을 홍보해버린 것이다. 누군가의 눈을 속이려 할 때, 자기 생각을 끝까지 드러내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것을 잘 지키는 사람을 일컬어 ‘고수’라고 한다. 북한의 대남 공세에 직면한 국방부가 이를 극복할 고수의 자질을 갖고 있는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한미 연합훈련으로 대표되는 한미 동맹 유지와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과정은 겉으로는 잔잔하나 수면 아래는 북한이라는 거대한 암초가 있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치밀한 항해계획과 정확한 지도, 고도의 긴장감 없이 배를 몰고 바다로 나서면 암초에 걸려 모든 것을 잃는다. 정부와 군이 근거 없는 낙관론에 휩싸여 과거의 관성을 지속하거나 치밀한 전략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남북 관계는 언제든 좌초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암초에 걸려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며 절망에 빠진 선주(船主)의 모습을 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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