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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투어 종착지 ‘베네치아’/이방인들을 사랑한 ‘베를린’ 등/당시 도시가 품은 욕망과 풍요/인문학자들 발걸음으로 탐사
정병설·김수영·주경철 지음/문학동네/2만2000원
18세기 도시/정병설·김수영·주경철 지음/문학동네/2만2000원


도시는 돈과 시장이 몰리는 곳이다. 18세기 유럽 경제는 17세기 암스테르담을 빼놓을 수 없다. 암스테르담은 자본주의 경제와 부르주아 문화가 가장 일찍 꽃핀 곳이다. 1630년대 ‘튤립 광기(tulipomania)’는 투기 광풍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돈놓고 돈먹기’라는 오늘날 선물 거래의 기원이다. 실물 없이 거래가 이루어지는 이런 현상을 당시엔 ‘바람장사(windhandel)’라고 불렀다. 튤립 알뿌리 값이 마침내 정점을 찍은 순간, 투매가 시작됐고 막차를 탄 사람들은 망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가난한 이들이 투매에 몰려들었으나 바람처럼 사라지고 만다.

가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나폴리의 ‘라차로니(lazzaroni)’다. 라차로니는 거지들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 인구 200여만 명의 나폴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번화했다. 런던과 파리에 견줄 만했다. 라차로니는 5만~6만 명에 이른다. 나폴리에 들어선 여행자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거지들이 많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했다. 저자들은 나폴리의 비옥함이 오히려 라차로니를 양성했다고 풀이했다.

18세기 베네치아는 ‘그랜드 투어’라 불리는 견문 넓히기 여행의 주요 종착지였다. 하지만 매춘과 도박 등 퇴폐 업종도 함께 성했다. 베네치아 카르네발레 축제에서는 가면무도회가 성행했다. 베네치아 여성들 사이에서 검은색 가면 모레타(Moretta)가 인기였다. 이 가면을 쓰면 말을 할 수 없었다. 대화를 하려면 가면을 벗어야 했다.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만 가면을 벗는다. 이는 여성에게 자유와 선택권을 부여한 가면이라 할 것이다. 베네치아 남자들은 가면 축제를 싫어했다.

도시들이 번성하는 안정된 시기였던 18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모습이다. 암스테르담은 선물 거래소가 가장 먼저 만들어졌던 자본주의의 상징과 같은 도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베를린은 18세기 프로이센 왕국의 중심이었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신교도들과 유럽에서 모여든 유대인들 역시 베를린으로 모여들었다.

같은 시기 서울은 어땠을까. 18세기 서울 술집의 대명사 ‘군칠이집’ 이야기가 나온다. 종로에서 청계천 가까운 쪽에 있던,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술집이 군칠이집이다. 술꾼으로 흥청망청했던 서울의 단면이다. 당시 서울은 소설에 푹 빠져 있었다. 규방 처자들은 물론이고 임금과 비빈까지 소설에 재미를 붙여 책을 빌려주는 산업이 발달했다고 한다. 숙종대에 나온 사씨남정기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평양에는 조선팔도의 물건이 모두 모인다. 박물장수의 천국이었다. ‘평양감사향연도’에 나타난 평양의 화려함과 풍요, 대동강 뱃놀이 풍경 등이 흥미롭게 묘사된다.

18세기는 현대적 도시의 등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동아시아는 정치적 안정 속에 고도 성장을 이뤘다. 산업과 경제 성장이 도시의 발전을 추동했다.

책에는 런던, 파리, 피렌체, 에든버러, 이르쿠츠크, 뉴욕, 평양, 서울 등 각국 대표도시들이 망라되어 있다. 국내 전문가들이 18세기 세계 도시이야기를 풀어낸다.

주요 집필자 정병설 교수는 “단체여행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이 명승 저 박물관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게 서둘러 찍고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옛 도시 구도심 호텔에 짐을 풀고 천천히 시내를 걸어다니다가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는 자세로 이 책이 읽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책을 만든 ‘한국18세기학회’는 세계의 18세기를 연구하는 인문학자들의 모임이다. ‘국제18세기학회’의 한국지부 격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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