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국가를 운용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총알을 물려 하기보다는 달콤한 사탕을 핥으려고만 하다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국가들을 쉽게 목격한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좇고 설익은 결과를 대내외적으로 자랑하려다 보니 스스로 발목을 잡은 채 자기 최면에 걸려 반복적으로 허우적대는 국가들 말이다.
이상혁 국제부장 |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의 축복으로 한때 남미 최대 부국임을 자랑했다. 중남미 좌파 벨트의 맏형을 자처하던 이 나라는 오랜 포퓰리즘 정책으로 현재 국가부도 상태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식료품·의약품 부족으로 고통받는 국민 등 베네수엘라는 비극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1만300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놀랍지 않다. 국민은 나라를 버리고 이웃 국가로 탈출 러시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서유럽 최초 포퓰리즘 정권이 탄생한 이탈리아에 세계의 불안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유럽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고 글로벌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과 원내 다수당인 포퓰리즘 정당(오성운동 및 동맹)이 벌이는 맞대결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공언한 포퓰리즘 세력이 결국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 3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가 EU에서 빠져나오면 EU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그런데도 이탈리아 여론은 오성운동과 동맹 등 포퓰리즘 정당에 유리하게 형성되는 중이다. 현지 여론조사에서 연정 출범을 저지한 마타렐라 대통령 결정에 부정적인 응답자가 59%나 됐다. 오성운동과 동맹에 대한 지지율은 각각 30.1%와 28.5%였다. 두 정당의 세력은 향후에도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탈리아가 재정 파탄으로 EU 각국의 보조를 받은 그리스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고조된다. 이탈리아 경제 규모(GDP)는 그리스의 10배에 달한다. 이탈리아가 쓰러졌을 때 다시 세우기 위해 EU가 감당해야 할 액수는 ‘상상’ 이상이다.
이탈리아 정치에는 ‘옳은 말’보다 ‘듣기 좋은 말’뿐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포퓰리즘 정당들이 득세하고 기존의 중도 우파, 중도 좌파 정당들은 지지 기반을 잃고 있다. 주 20시간 근로시간 단축 등을 내걸고 만들어진 포퓰리즘 정당은 모든 국민에게 월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약속하는가 하면 부자에게는 상속세 폐지, 난민 단속 강화, 가난한 사람에게는 세금 전액 면제, 연금수령 연령 하향이라는 미끼를 던졌다.
6월에는 ‘큰일’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수개월째 씨름 중인 북·미 정상회담이 12일에 싱가포르에서 과연 열릴지는 전 세계의 최고 관심사다. 14일에는 세계인의 큰 축제인 러시아월드컵이 개막한다. 우리에게는 국가 미래를 좌우할 13일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앞뒤 따지지 않고 표만 노린 “일 안 하고도 잘살 수 있다” “세금 줄여줄 테니 그 돈으로 자기 계발하라”는 식의 포퓰리즘 정책들이 쏟아질 게 분명하다. 남발하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껍질만 남은 그리스, 베네수엘라에 이어 흔들리는 이탈리아를 보며 우리도 경제, 외교·안보, 정치, 사회 등 모든 면에서 ‘이를 악물어야 하는’ 중차대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상혁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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