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기홍칼럼] 공직사회의 올드보이들

관련이슈 김기홍 칼럼

입력 : 2018-06-05 00:21:18 수정 : 2018-06-05 00:21:1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지금도 누군가 전화 기다릴지도 / 인생 이모작 사회 봉사하려면 / 고액 연봉 일자리 어울리지 않아 / 지혜와 경륜 보태는 데 힘썼으면 정권이 바뀌면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되는 자리는 2000여 개 정도 된다. 최선을 다해 새 사람을 고르겠지만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대통령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모든 자리의 주인을 자세하게 살필 수 없다. 그 틈을 비집고 소리 없이 내리꽂는 낙하산 인사는 원천적으로 막지 못한다. 정권 창출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자리를 전리품으로 나눠 주는 논공행상 관행을 바로잡지 않는 한 도리가 없다.

‘적폐 청산’을 외치는 문재인정부가 낙하산 인사를 답습하는 것은 의외다. 며칠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이 내정됐다. 노무현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정책수석과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지적과 함께 ‘올드보이 귀환’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의 나이 69세다. 뒷말이 나오는 까닭은 금융권을 비롯한 공공기관장에 윤 내정자 말고도 올드보이들이 적지 않아서다. 노무현정부 청와대 경제보좌관과 금융감독위원장 출신으로 지난해 10월 취임한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은 68세다. 지난해 취임한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은 72세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으로 노무현정부 시절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을 지냈다. 문재인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뒤 작년 11월 석유협회장으로 선임된 김효석 전 의원은 69세다. 민주당 의원 출신인 유대운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은 68세다. 우연이 반복되면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김기홍 논설위원
박근혜정부 때도 올드보이 논란이 있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유흥수 주일대사,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쟈니 윤 한국관광공사 감사, 이인호 한국방송공사 이사장은 80세 안팎이었다. 이 때문에 30대 나이에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60년대에 태어난 ‘386’이 있다면 1930년대에 태어나 80세를 바라보며 60년대 사회활동을 시작한 ‘신386’도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70세 전후의 나이로 노익장을 보여주는 문 정부 올드보이들은 ‘올드보이 시즌 2’쯤 되려나.

100세 시대에 나이를 따지기가 조심스럽다. 젊은이들 못지않은 건강한 정신과 신체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노년층이 많다. 그러나 오랫동안 현장을 떠나 있다가 과거의 인연으로 공직 수장 자리를 꿰차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공직사회도 민간기업 못지않게 혁신과 창의가 필요하다. 현장 감각이 뒤처지고 두뇌 회전도 느려 신속한 판단과 결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공직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도 기대하기 어렵다.

유흥수 전 대사는 김기춘 비서실장에게서 일본대사를 제의받고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을 쓰면 누가 된다”고 고사했다가 “사심을 가지고 누구 봐주려는 게 아니다”라는 김 실장의 말을 듣고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수 있다. 지금이라도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노년기 인생 이모작의 기회로 삼아 사회에 봉사하려는 것이라면 고액 연봉 일자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리에 매달리지 말고 평생 쌓아온 지혜와 경륜을 보태주었으면 좋겠다.

문 대통령은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논란 당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논란을 피하는 무난한 선택이 있을 것입니다. 주로 해당 분야의 관료 출신 등을 임명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깁니다”라고 했다. 올드보이 낙점은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 대신 또 다른 욕심을 품고 논란을 무릅쓴 채 ‘무난한 선택’을 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오래전부터 알고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익숙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다면 국정운용의 상상력 빈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보다 강력한 혁신과 파격의 새바람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젊은 피가 돌아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앞장서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도록 해야 밝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청년들은 기득권이 쌓은 높은 장벽에 막혀 실의에 빠져 있다. 어른들이 제 밥그릇이나 챙기고 있을 때가 아니다.

김기홍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