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당시 고속철도 민영화에 반대한다던 박근혜 정부는 기묘한 선택지를 꺼내들었다. 경쟁체제는 도입하되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고속철도 분리는 민영화의 준비단계’라며 맞섰고, 논란이 거듭되던 2013년 겨울,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시작으로 반대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정부는 SR을 코레일의 자회사로 설립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결국 민영화와 공공철도, 분리와 통합 사이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무늬만 경쟁인 어정쩡한 모습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경쟁이란 규칙이 공정할 때 가치를 발한다. 시작부터 정체성이 모호했던 KTX와 SRT의 동거생활은 많은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다. 출발역이 다른 두 회사는 태생부터가 경쟁과는 거리가 먼 구조이다. 한 번 물어보자. 어느 누가 몇 천원 아끼자고 멀리 떨어진 역까지 이동해 열차를 선택한단 말인가? 고속철 이용객들은 가격보다는 접근성을 중시한다.
민재형 서강대 교수·경영학 |
잘못된 정보는 국민을 오도한다. 마치 경쟁을 통해 SRT의 운임이 낮아지고 서비스가 좋아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오히려 철도 운영사가 이원화되면서 차량운영의 비효율성이 증가하고 중복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고속차량 운영사가 둘로 나뉘면서 차량이 불필요하게 역에서 대기해야 하고, 경쟁사 열차시간도 피해야 하는 등 열차운행에 제약조건이 늘어났다. 제약조건이 많아지면 최적해는 그 이전보다 나아질 수 없다. 별도의 고속철 회사가 운영됨에 따라 법인설립을 위한 매몰비용 외에도 인건비 중복, 별도의 광고비, SR 사옥 임차료 등 연간 300억 원에 달하는 불필요한 비용도 지출되고 있다. 또한 SR 투자자에게 공사채 민평금리인 2.3%보다 훨씬 높은 5.6%의 수익률을 보장하여 고속철도 이익이 철도산업에 재투자되지 않고 외부로 유출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쟁으로 인해 서비스의 개선효과가 있다며 SRT의 충전 콘센트를 거론한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전 좌석에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다는 SRT 차량은 본래 호남선을 운행하던 KTX-산천이었다. 이를 서비스 개선이라고 국민을 기만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SR의 등장 이후, 흑자였던 코레일은 1년 만에 약 7000억 원의 손실이 늘어나 적자로 전환되었다. 반면 SR은 경부선과 호남선이라는 알짜 노선만을 운영하는데도 영업이익이 약 400억 원에 그쳤다. 6000억 원이 넘는 금액이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코레일은 KTX의 수익으로 무궁화호, 화물열차 등 적자철도의 손실을 보전하고 있다. 코레일의 적자가 계속 누적된다면 공공철도의 대대적인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공성이 존재이유인 공기업이 정부 주도의 관치경쟁으로 인해 공익을 축소해야 하는 것이다.
코레일은 SR과 통합 시 KTX 요금을 10% 인하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코레일과 SR이 통합되면 비효율이 제거되어 하루 46회, 연간 1000만석의 열차 공급이 늘어날 수 있다. 이는 약 3000억 원 매출에 해당하는 규모로, KTX 요금을 할인하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또한 수서역에서도 전라·경전·동해선으로 직결운행이 가능하여 전국에서 고속철의 수혜대상이 확대되고, 지역 균형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아울러 안전관리 규정 및 재난대응 컨트롤센터가 일원화되면서 지금보다 더 안전한 고속철을 국민이 이용할 수 있다.
판문점 선언 이후, 코레일의 국가적 중요성은 매우 커졌다. 한반도 고속철, 나아가 대륙 고속철을 운영할 현실적인 역량을 가진 회사는 국내에서 코레일이 유일하다. 코레일은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경쟁자들과 싸워야 할 운명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코레일과 SR의 이원화로 코레일의 적자는 심화되고, 이로 인해 공공철도인 무궁화호와 화물열차의 경영 또한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런 코레일에게 대륙철도 진출이라는 국가적 사명을 수행하라는 것은 쇳덩이를 매달고 바다를 건너라는 말과 같다.
한때 KTX와 SRT의 통합 논의는 민영화와 공공성 사이의 정치적 대립이었다. 또한 철도산업의 분리와 통합 중 어느 쪽이 효율적인가를 확인하는 사회적 실험이었다. 실험의 결과는 객관적 지표가 보여주듯 통합으로 기울고 있다. 이제 선택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세계 철도와의 무한경쟁에 맞설 국가대표 철도를 육성할 것인가, 아니면 명분도 실리도 없는 각자도생에 맡길 것인가? 그 대답은 자명하다.
민재형 서강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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