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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학개론] (13) 결혼 준비의 '선택과 집중'

입력 : 2018-06-02 13:00:00 수정 : 2018-06-01 23: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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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점점 더워진다. 우리 집에서는 이맘때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에어컨 정비’다. 한여름만 되면 땀을 한바가지씩 쏟아내는 집사람(?)을 위한 연례행사다.

한해는 에어컨 정비를 하지 않고 한여름을 맞이했다. 당연히 잘 작동할 것이라고 여겼던 에어컨이 삼복더위에도 뜨거운 바람만 내뿜었다. 급하게 AS센터에 연락을 했지만 2주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고, 우리는 그해 여름을 진땀 나는 고통 속에서 보냈다.

그렇게 작년까지 그럭저럭 버티며 쓰던 에어컨이 잦은 이사 때문인지 영 시원치 않았다. 더 이상은 함께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바꾸기로 과감히 결정하고, 대형 전자제품 마트를 찾았다. 제조사별 에어컨 성능과 모델을 살펴보고, 온 김에 다른 제품도 둘러보았다. 결혼한 지 10년이 훌쩍 넘으니 요즘 냉장고며 TV, 세탁기 등이 영 시원치 않았던 탓이다.
  
전자제품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비싼 줄은 미처 몰랐다. TV는 500만원을 웃돌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냉장고는 1000만원이 넘는다.

뿐만 아니라 10여년 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상품이 너무 많았다. 건조기, 스타일러, 로봇 청소기, 공기청정기 등 가짓수를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에어컨 견적을 받으려고 자리를 잡고 앉으니 옆 테이블에서 신혼부부가 혼수 견적을 뽑고 있었다.
  
“건조기도 있어야지?”

“냉장고는 가장 좋은 사양으로 사야 해”

“스타일러도 있어야 하지 않아?”

“로봇 청소기도 꼭 필요한데.”
 
두사람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

‘저걸 다 사면 도대체 얼마야?’
 
이런 생각이 떠올라 얼추 잡아봤더니 2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요즘 스몰 웨딩이 유행이다. 결혼식 거품을 없애고 가족과 친척, 친구만 초대해서 주례 없이 간단하게 결혼식을 치르는 것이다.

아예 결혼식도 생략하고 사는 부부도 많다. 집 역시 너무나 비싸서 반전세나 월세로 시작하는 이들이 적잖다.
  
그럼에도 신혼집에 들어가는 세간 그중에서도 전자제품에는 은근 힘을 주게 되는 모양이다. 이해는 간다. 처음으로 생긴 둘만의 공간이고,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새로 시작하는 그들만의 공간이다. 어찌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없으랴!
  
결혼 후 바로 치르는 집들이며, 손님 방문 시 제일 잘 보이고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전자제품이다. 좀 더 근사한 것이 보기에도 좋고, 쓰기에도 당연히 편리할 것이다.

어쩌다 보니 나는 신혼 가전제품을 몽땅 이월 상품으로 구비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전시만 하고 쓰지 않았던 제품이었다. 신모델이 아니었기에 멋진 디자인도, 놀라운 성능도 없었다. 그저 TV는 잘 나왔고, 냉장고는 얼음을 잘 얼렸다. 세탁기는 빨래가 잘 되는 정도였다.
  
결혼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도 힘들지만 집값에 허리가 휘고, 전자제품값에 무릎이 꺾인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의 미덕이 아닐까, 뛰어난 성능과 훌륭한 디자인의 제품이 하루에도 몇개씩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부 다 구비해서 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두사람이 함께 살면서 하나씩 살림을 늘려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당장 필요한 물품만 ‘선택’하고, 그 제품의 본래의 기능에만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
  
이윤영 방송작가  blog.naver.com/rosa0509, bruch.co.kr/@rosa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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