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언론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앞다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AP 통신은 △북한의 일부 핵무기 양도 △제한적 동결(cap and freeze) △북핵 단계적 해체 등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북·미 간 끝없는 협상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주한 미군 감축 등 북한의 승리 △회담 결렬 등 4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언론 매체 ‘복스’(Vox)는 △엉성한 비핵화 선언 △북한 핵과 주한 미군 동시 감축 △회담 결렬 △북한의 비핵화 등 4가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서 손 잡은 김영철·폼페이오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의제 논의를 위해 미국을 처음 방문한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왼쪽)이 지난 5월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주유엔 미국 차석대사 관저에서 열린 만찬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로 ‘부분 합의, 회담 장기화’를 꼽고 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의 기본 원칙에 합의하고, 현실적인 비핵화 일정표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와는 거리가 먼 합의이다. 두 정상은 비핵화의 구체적인 방법을 후속 회담으로 넘길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북·미 간에 수개월, 수년이 걸리는 협상이 계속될 수 있고, 비핵화는 느린 속도로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 북·미간 회담이 이번 한 번으로 끝이 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비핵화 합의를 하기 위해서는 한 번 넘게 회담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간 고위급 회담이나 실무자 간 회담뿐 아니라 정상회담도 몇 번 열려야 북한의 비핵화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에도 기자들에게 “회담이 의미가 있길 원한다”면서 “그것은 한 번의 회담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회담)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방식으로 폐기했다. 풍계리 핵실험 관리 지휘소시설 목조 건물들이 폭파 되며 산산이 부숴지고 있다. 이날 관리 지휘소시설 7개동을 폭파했다. 사진=연합뉴스 |
민타로 오바 전 국무부 관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 개발 동결과 감축을 하되 핵무기와 핵 개발 프로그램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이때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핵시설 사찰을 허용하고, 핵 프로그램을 진척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 보일 수 있다.
북한의 이런 양보는 물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전제로 한다. 북한은 경제 제재 완화, 체제 보장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북한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정상 국가로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으려고 한다.
북한이 핵 개발 동결과 부분적인 감축을 보장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 미군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사라고 언론 매체 복스가 지적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려고 한·미 동맹 관계를 협상의 카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문제에 관해 구체적인 합의를 보지 못한 채 빈손으로 회담을 끝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협상장을 박차고 나올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회담장에서 뛰쳐나오는 게 현재 거론되고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등 미국의 전문가들은 김-트럼프 회담이 결렬되면 미국에 남은 선택은 군사 옵션밖에 없다고 경고해왔다. 트럼프 정부 내 매파가 북한을 향한 진군나팔을 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의 군사 옵션에 강력히 반대하고, 미국에서도 대북 선제공격에 따른 전면전 비화 가능성을 우려해 실제로 군사 작전을 감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미국은 다시 대북 제제를 강화하려 할 것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북한과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최고의 시나리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합의를 하는 게 이번 정상회담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미국의 전문가 중에 북한이 완전히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북한이 체제 보장을 원하고 있지만, 최후의 체제 보장 수단이 핵무기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언론 매체 복스는 “문 대통령이 사실관계를 윤색했거나 지나치게 낙관론을 개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요구대로 2년 내 핵무기와 핵시설 등을 폐기하지는 않더라도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핵무기를 해체하는 과정을 밟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미국의 핵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해체에 줄잡아 15년이 걸릴 것으로 분석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면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끌어낸 공을 인정받게 된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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