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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판문점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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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01 00:20:08 수정 : 2018-06-01 0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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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간 네 채가 있는 마을’ / 정전 협상으로 세계 주목 끌던 / 냉전의 상징이 대화의 장으로 / 한반도 평화의 문 활짝 열길 판문점(板門店)은 예전에 널문리라고 불리던 곳이다. 서울과 개성을 오가는 사람들이 숨을 돌리던 주막거리였다. 6·25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부터 정전회담이 열리면서 판문점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회담에 참가한 중국군이 회담장 옆에 있던 주막 ‘널문리 가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판문점 서쪽 사천(砂川)에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옛 이름도 널문다리다. 판문점 포로교환 당시 이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미군이 새 이름을 지었다.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이곳은 유엔군과 북한군의 공동경비구역(JSA)이 됐고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과 남측 평화의집, 북측 통일각 등이 들어섰다. 냉전의 최전방이어서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지면 역사의 현장이 되곤 했다. 1968년 납북된 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 1976년 도끼만행 사건 등의 무대여서 판문점 하면 사람들은 남북 간 긴장을 떠올렸다. 이호철이 소설 ‘판문점’에서 이곳에 대한 이역감(異域感)을 드러내며 ‘해괴망측한 잡물’, ‘가슴패기에 난 부스럼’이라고 한 이유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세월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점차 바뀌었다. 1985년 서울과 평양에서 이뤄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 공연’은 민간 차원의 첫 판문점 통과 기록을 남겼다. 1998년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이곳을 지나 북한 방문길에 올랐다. 판문점은 장벽이자 통로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게 됐다.

지금 다시 판문점이 주목받는다. 이번에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의 장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평화의집에서 첫 정상회담을 했다. 청와대는 냉전 종식의 출발점인 1989년 몰타회담보다 더 상징적인 회담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5월26일에는 통일각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 전날 북측 제안으로 성사된 파격적인 회담이었다. 남북이 평화의집과 통일각을 번갈아가며 회담하는 관례가 있어 별 탈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회담 장소는 그만큼 중요하다.

두 번째 정상회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 후 전격적으로 이뤄져 북·미 회담의 불씨를 살렸다. 성 김 주필리핀 대사를 단장으로 하는 미국 대표단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이 통일각에서 두 차례 실무회담을 열고 북·미 정상회담 핵심 의제인 북한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 방안을 조율했다. 판문점에서 열린 만큼 우리 정부도 일정 부분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실무회담 성과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간 뉴욕 고위급회담으로 이어지면서 북·미 협상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다. 4·27 판문점 선언 후속조치를 논의하는 남북 고위급회담도 북한의 일방적 연기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오늘 평화의집에서 열린다.

헝가리 작가 티보르 메러이는 판문점에서 정전회담이 시작될 때 종군기자로 현장을 취재했다고 회고한다. 첫 번째 텐트가 막 세워져 있었는데 미국·유럽 기자들은 이곳을 ‘헛간 네 채가 있는 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초가집을 헛간으로 본 것이다. 메러이는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 현장에도 있었다고 한다. “내 스스로 도저히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여 모든 희망을 버렸던, 그러나 마침내 기적처럼 실현된 역사적 사건, 정전협정이 조인되는 바로 그 자리에.”

그 후 65년이 지난 지금 판문점에서 이뤄진 일련의 회담들은 다가오는 한 시대를 성격 지을 일대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어떤 시기에 이뤄지는 협상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훗날 역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회고록에서 “협상은 작은 성공에서 시작해서 큰 성공으로 이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북한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의 맞교환이 순탄하게만 진행될 리는 없지만 일단 협상이 시작된 것은 의미가 크다. 북·미 정상회담 이전과 이후 판문점에서 크고 작은 회담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이런 회담들의 성과가 쌓여 한반도 평화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길 기대한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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