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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文대통령, 디테일 강한 중재자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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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31 20:04:28 수정 : 2018-06-01 00: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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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먼저 대화를 청탁하고도 마치 우리가 마주 앉자고 청한 듯이 여론을 오도하고 있는….” (5월24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담화)

“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이 북한의 요청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개서한)

김민서 외교안보부 차장
같은 날 낮과 밤의 시차를 두고 나온 최선희 부상 담화와 트럼프 대통령 공개서한에서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 간인 두 국가 사이에 오작교를 놓은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 섞인 짜증이 배어났다.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는 한국을 향한 뺨 석대나 다름없었다. 동맹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북·미 정상회담 논의는 본궤도에 올랐지만 미국 쪽에선 “한국과 북한이 하는 얘기가 다르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중재자의 정직성은 북·미 협상과정을 통해 양쪽에서 검증을 받는 중이다. 만에 하나 핵 담판 결과가 좋지 않으면 미국의 체제보장 공약과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CVID) 의사를 중간에서 지급보증한 중재자에게 화살이 돌아올 수 있다. 보증 잘못 서면 집안이 망할 수 있다는 말은 국가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발표는 북한의 풍계리핵 실험장 폐기 효과를 0으로 만들었다. 이를 놓고 한 북한 전문가는 “벼랑 끝 전술의 원조가 벼랑 끝 전술의 황제한테 완전히 당했다”고 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CVID와 북한이 필요한 CVIG의 구체적 교환 방정식과 순서는 곧 정해질 것이다. 워싱턴은 공격적 사찰·고강도 검증 방식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이번이 대화를 통한 완전한 북핵 폐기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한 인사는 “솔직히 미국 입장에서는 CVID 합의가 이뤄져도 검증, (핵무기와 핵물질) 보관·관리 문제 등 복잡한 게 많아 골치가 아프다”며 “비핵화 합의 불발 시 트럼프 대통령이 얘기한 다음 단계(next step)가 오히려 미국에는 더 편하고 깔끔하고 분명한 북핵 폐기 방법이라는 게 백악관 기류”라고 워싱턴 분위기를 전했다.

세기의 핵 담판 이후 중재자에 머물렀던 문재인정부의 역할은 직접 운전대를 잡는 운전자로 진화할 것이다. 난폭운전을 할 게 아니라면 디테일에 강해져야 한다. 얼마 전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이 남북정상회담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으로 보이지만 당사국 입장에서는 오해를 할 수 있는 일이다. 비슷한 시기 한 전직 외교관은 대일 외교에 대해 “푸대접보다도 못한 무대접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남북관계 발전만으로 항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할 수 없다. 남북관계의 질적·양적 발전과 속도는 북·미 관계와 분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반도 주변 4강 외교의 디테일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야 할 때다. 이런 때 정부 안팎에서 “이 모든 것을 대통령이 혼자 결정하는 것은 아닐 텐데 누구와 상의하고 논의하는 것인지, 청와대에 북핵 협상 전문가도 없는데 그 안에서는 누가 자세한 내용을 챙기는 거냐”는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점은 걱정스럽다. 대통령이 일일이 디테일까지 다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김민서 외교안보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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