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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적폐청산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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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29 23:58:57 수정 : 2018-05-29 23: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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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비야디’ 굴기 비결 투자·혁신 / 韓 기업 과거 적폐에 ‘좌불안석’ / 경제가 골병들면 미래는 암울 / 文정부, 기업 기 살리기 나서야 2010년대 초반 베이징특파원 시절 겪었던 일이다. 당시 비야디(BYD·比亞迪)는 전기차 제조업체라기보다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투자한 기업으로 더 유명했다. 당시 베이징 도로에서는 외제차량으로 넘쳐났고 가성비가 좋은 현대차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비야디는 전기차 제조공정을 일절 공개하지 않았고 길거리에서도 차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버핏은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2억3000만달러를 투자해 비야디의 지분 10%를 사들였다. 하지만 이 기업은 수년간 적자를 냈고 일본 자동차의 디자인이나 흉내 내는 저급한 기술력을 가진 곳이라는 혹평이 뒤따랐다. 베이징의 기업인들도 비야디는 실체 없는 곳이라며 버핏이 실수했다고 평가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대반전이 일어났다. 비야디는 혁신을 거듭하며 2015년 전기차 6만1722대를 팔아 전기차의 원조 미국 테슬라를 제치고 글로벌 판매 1위에 올랐고 지난해까지 3년간 이 자리를 고수했다. 2016년에는 순이익이 50억5200만위안(8200억원)에 달했다. 물론 가치투자의 달인인 버핏은 비야디 투자에서도 빛을 발하며 대박을 냈다. 비야디의 성공신화는 친환경정책 등 중국 당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배터리왕’ ‘전기차왕’이라 불리는 창업자 왕촨푸(王傳福) 회장의 열정과 경영혁신, 그리고 풍부한 내수기반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주춘렬 산업부장
중국은 이미 드론시장에서 세계를 장악했고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등 주요 신산업에서 한국을 추월한 지 오래다. 중국기업의 굴기(우뚝 섬)와는 달리 한국기업들은 날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실종됐고 투자심리는 얼어붙었다. 요사이 기업인들은 너나 가릴 것 없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무엇인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가늠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문재인정부는 국내 재벌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지난 1년여 동안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고 주요 대기업들도 끝도 없이 검찰과 경찰 등 사정당국으로부터 수사를 받거나 압수수색당하는 사태를 이해하기 힘들다. 기업들은 자고 나면 터져나오는 비리의혹과 갑질 폭로에 좌불안석이다. 오죽하면 재계에서는 국방부를 뺀 전 부처가 재벌 때리기에 나섰다는 ‘웃픈’ 얘기까지 나온다. 문재인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적폐청산을 1호 국정과제로 정해 27개 부처에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했다. 국정 전반에 적폐청산의 지상명령이 관류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년간 친노동과 공정경쟁 정책이 난무하고 혁신성장은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성싶다.

혁신성장의 엔진과 일자리 창출의 주역이 기업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과거의 적폐에 발목이 잡힌 기업은 일자리 창출이나 투자에 나설 여유가 없고 미래를 생각할 겨를도 없다. 성장, 실업, 투자, 소비 가릴 것 없이 모든 경제지표가 나빠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살아나지 않고는 문재인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소득주도의 성장’도 모래성에 불과하다.

이제 문재인정부는 시계를 넓혀 한국경제 미래의 불씨를 지피는 데 나서길 바란다. 그 일은 기업의 기 살리기부터 시작돼야 하고, 적폐청산이 기업혁신과 경제성장을 갉아먹은 광풍으로 변질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성장, 재정, 금리 환율, 주식 등 주요 경제변수들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반응하며 경제의 엔진은 기업가정신이라는 게 역사의 경험이자 경제현실이다. 문재인정부는 글로벌시장에서 약진하는 비야디 등 중국기업의 굴기 비결을 곱씹어보고 국내 파장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과거에 쌓여온 폐단은 효과적이고 실용적 처방으로 해결해 견실한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으면 될 일이다. 경제가 골병들고 망가져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도 진지한 자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다. 시중에는 재벌을 때려야 지지율이 오른다는 얘기가 나돈다. 그냥 흘려들을 말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 깔린 반재벌 정서가 만만치 않다.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바꾸는 일은 재벌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이다.

주춘렬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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