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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레짐 체인지 공포 안긴 ‘리비아모델’/ 트럼프, 문재인도 완전한 체제보장 못해  2차 정상회담에 앞서 판문점 북측 통일각 백두산 그림 앞에 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소 띤 문재인 대통령과 달리 굳은 표정이었다. 1차 회담 당시 남측 평화의집에서 금강산 그림을 배경으로 시종 문 대통령과 환하게 웃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급박하게 문 대통령 회동카드를 쓸 수밖에 없는 복잡한 속내가 엿보인다. 그의 고민을 문 대통령이 다음 날(27일) 기자회견에서 전했다. “김 위원장에게 불분명한 것은 비핵화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핵화할 경우 미국에서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에 대해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데 대한 걱정이 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번개회담’에서 처음 꺼낸 얘기는 아니라고 본다. 1차 남북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도보다리 산책에서도 비슷한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상상컨대, 비핵화를 전제로 북·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앉으라는 문 대통령 설득에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믿을 만한가. 체제안전을 확실히 보장하겠는가”라고 물었을 것이다. 두 차례나 평양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고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6·12 싱가포르 회동 날짜를 받아놓고도 그의 ‘걱정’은 풀리지 않았다. 김계관 조선외무성 제1부상 담화나 최선희 외무성 부상 담화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 담화 모두 ‘리비아모델’에 대한 반발이다.
황정미 편집인

“처참한 말로를 걸은 리비아와 비교하다니 아둔하기 짝이 없다.” 겉으로는 핵 개발 초기단계였던 리비아와 이미 핵을 보유한 북한을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주장이지만,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처참한 말로’에 대한 불안이 짙게 깔려 있다. “김정은이 합의하지 않는다면 리비아모델이 끝난 것처럼 북한도 끝나게 될 것”이라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말은 김 위원장의 걱정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미국이 리비아처럼 ‘완전한 비핵화’를 넘어 ‘체제변화(Regime Change)’를 꾀하는 것은 아닌가. 더욱이 리비아모델을 강조하는 이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북한을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나라로 지목한 그는 이란 핵협상 파기를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볼턴은 몇달 전 이란 망명자단체 연설에서 트럼프정부의 핵협상 파기를 예고한 뒤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1979년 혁명이 40년까지 지속되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내년이 이란혁명 40주년 되는 해다. 그의 자서전 제목은 ‘항복은 선택이 아니다(Surrender is not an Option)’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모델’이 아니라 ‘트럼프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협상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볼턴의 조언대로 북측 반발에 회동 취소라는 초강수를 뒀다. “아무 때나 마주앉아 문제를 풀자”는 김계관의 편지, 깜짝 2차 남북정상회담 카드로 북·미회동은 복원수순을 밟고 있지만 김 위원장 걱정이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판돈이 크게 걸린 내기에선 밑천과 담력이 두둑한 쪽이 이기는 법이다. 반전을 거듭한 북·미 외교전에서 승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쥐고 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받아내고 김 위원장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안전보장’(CVIG)을 약속할까.

레이건 미 대통령은 1986년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과의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빈손으로 걸어나왔다. ‘세기적 대타협’이 점쳐졌지만 최종 순간 고르바초프의 SDI(전략방위구상) 폐기 요구를 거절하면서 합의는 깨졌다. 3년 후 소련 붕괴로 레이캬비크 회담은 냉전시대의 막을 내린 성공적 회담으로 평가된다. 레이건 시절의 ‘강한 미국주의’ 향수를 공유하는 트럼프와 볼턴은 쉽게 김 위원장이 내민 청구서에 사인을 하지 않을 것이다. “레짐 체인지는 없다”는 말을 이끌어내는 게 최상의 성과일지 모른다. 사실 그것도, 김정은 체제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하진 못한다. 카다피의 ‘비극적 최후’는 핵 포기 때문이 아니라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시작된 민중봉기와 내전에서 비롯됐다. 김정은의 CVIG 역시 북한 주민들에 달려 있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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