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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만 믿었는데"…근로감독관도 내 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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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30 10:00:00 수정 : 2018-05-29 20: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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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스토리-甲甲한 직장⑪-ⓐ] 일부 근로감독관 인식 및 관행도 문제
제보자 신원 넘기고, 진정인 질타하고…일부 노골적 '갑질 감싸기'에 분통
<편집자주>

“회사 안은 전쟁터요, 회사 밖은 지옥이다.”

국가 및 사회의 민주주의는 크게 진전됐다는데, 우리들은 언제부턴가 이같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전쟁 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원인 또는 이유를 찾아가자면, 우리들의 삶이 가장 많이 머무는 직장도 그 연루 혐의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직장 앞에서 멈춰섰다는 지적도 많으니까요.

오너 갑질, 사장님 갑질, 부장님 갑질, 정규직 갑질, 공무원 갑질, 대기업 및 본사 갑질, 을의 갑질, 임금 갑질, 괴롭힘 갑질, 잡무 갑질, 노동시간 갑질…. 참 말도 많습니다.

세계일보는 우리들이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부조리한 실체를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보도는 직장인들의 ‘온라인 해우소’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공동기획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참여 부탁합니다. 혹시 자신이 겪고 있는, 또는 주위에서 겪고 있는 갑질이나 괴롭힘, 부조리가 있다면 그 증거와 함께 알려주십시오. 확인이 가능하고 공유할 가치가 있다면 기사를 통해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보를 보내실 이메일은 kimgija@segye.com 또는 homospiritus1969@gmail.com, 전화번호 02-2000-1181.
드라마 '송곳' 중 한 장면.

“회사 이사랑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고용)노동부에 제보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제가 노동부에 제보했는데 노동부가) 우리한테는 일이 생기면 그때 연락하라고 해놓고 회사에는 제보가 왔다고 알려줬나봐요. 믿을 건 노동부 밖에 없어서 연락한 건데…아무런 도움도 안되고 상여금만 날아가게 생겼네요. ㅠㅠ”

회사원 A씨는 최근 직장에서 당한 ‘억울한 일’을 고용노동청의 근로감독관에게 알렸지만 근로감독관이 이를 다시 회사에 알려줘 낭패를 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일부 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의 직무유기와 사측 편들기에 고통을 겪고 있다. 이른바 ‘근로감독관 갑질’이다.

대다수 근로감독관들이 근로자의 권리 확보를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가운데 일부 근로감독관이 근로감독을 청원한 직장인 정보를 회사에 넘겨주거나 사건 처리를 지연하며 노골적으로 회사 편을 들기도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미리 짜고 근로감독을 벌인다는 제보도 있다.

실제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간 근로감독관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 제보가 100여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직장갑질 119는 지난 9일 신원이 확인된 22건을 공개했다.

이는 근로감독관들이 광범위한 사업장에 비해 너무나 적은 인원에 과도한 업무량, 사용주들의 적극적인 방어 행태 등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환경이나 여건 때문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진정인 정보를 회사에 넘겨주기

한 노동단체는 게임제작사 노동자가 주당 12시간 이상의 연장근무를 하다가 과로로 사망한 뒤로 “나도 주당 12시간 이상 일하고 시간외근로수당을 받지 못했다”는 제보를 잇따라 받았다.

단체는 이에 증거자료를 수집해 지난해 9월 현장노동청을 찾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증거자료와 고발장을 전달했다.

회사 측은 올해 초 피의자 조사가 시작되자 고발자들의 신원을 확보한 뒤 일일이 찾아가 노동부에 제출한 증거가 무효라는 확인서를 쓰라고 요구했다. 고발자들은 이래저래 또다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직장갑질 119는 “근로감독관들이 진정인의 신원을 노출해 진정인들이 회사에 찍혀 불이익을 당하다 그만두게 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단체도 지난 1월 고용노동부에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명단을 정리해 넘겼는데,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리스트가 해당 기업에 통째로 들어간 사실을 알게 됐다.

직장갑질 119는 “제보자가 신분 노출을 원하지 않아 사업장 명단을 밝힐 수 없지만, 이런 근로감독관의 행위는 직권남용을 넘어선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근로기준법 위반은 사용자가 전체 직원에게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제보자나 진정인의 신원을 노출하지 않아도 근로감독을 통해 불법을 확인할 수 있지만 제보자 신원이 노출됐다는 거다.

직장갑질 119는 “진정인 조사를 하기에 앞서 근로감독관이 사측을 만나 진정인을 업무방해로 고소하고 급여를 삭감하는 방법 등을 안내했다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제보도 있었다”고 전했다.

◆노골적인 회사편들기나 처리 지연 및 합의 강요도

“노동부에 전화했더니 불이익 변경되고 나면 전화하라고…B제약회사에서 상여금 400%를 없애고 연봉제로 전환하겠다고 해서 전형적인 최저임금 꼼수로 판단돼 노동부에 전화했더니, ‘근로자한테 불리하다고 다 불법이 아니에요.’ 이렇게 짜증섞인 말투로….”

올해 초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신고센터에 최저임금 꼼수와 관련한 제보를 했던 B씨는 이같이 낭패감을 토로했다. B씨는 “맞는 말이긴 한데 최저임금신고센터라 해놓고 전혀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해주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경기지역 유통업체에 종사하는 C씨는 지난달 직장상사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C씨는 당시 상황을 증빙할 수 있는 음성파일을 확보하고 녹취록을 작성해 고용노동부에 고소했다. 근로감독관은 녹취록을 듣고도 “상처라도 있어야죠, 멱살 잡는 것은 폭행이 아니에요”라며 증거로 불충분하다는 입장만 전해왔다. 심지어 “증거가 전혀 없잖아요” “불리한 거 아시죠?”라고도 했다. C씨는 공인녹취록에 직장 상사가 폭행을 자백하는 내용도 담겼지만 “감정이 격해지면 ‘너 때렸냐, 나 때렸다’고 할 수 있다”며 “감정이 상했을 때 최고치에 있을 때 이건 대화일 뿐”이라는 말도 들어야 했다. C씨는 ‘증거가 없다’는 말만 계속하는 근로감독관의 태도에 “마치 가해자와 대화하는 듯 했고 그래서 포기하라는 것인지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짜고 하는 사업장 근로감독

근로감독을 미리 사전에 회사 측에 통보하면서 사전에 은폐작업을 할 여유를 주기도 하고, 근로감독 이후에도 별 변화가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회사원 D씨는 회사가 상여금을 꼼수로 기본금으로 포함시킨 것을 알고 지난 3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최저임금 제도를 악용하는 회사를 고발했다.

근로감독관이 이에 최저 임금 위반으로 회사에 근로감독을 나왔다. 하지만 회사의 관행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었다.

D씨는 “근고 감독에 실효성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회사에서 내부 고발자를 찾아서 걸릴까봐 눈치 보며 숨죽은 듯 지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F씨도 “(근로감독관이) 1주일 전에 노동감사를 나온다고 알려준 탓에 사장과 사모가 짜고서 가짜로 맞춘 계약서와 직원 간에 말을 사전에 맞추자고 사전에 모의했다고 하더라”며 “노동부가 개판이란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썩어있을 줄 몰랐다”고 탄식했다.

◆전문가들, “업무량 과도 환경 개선…불합리도 시정돼야”

직장갑질 119의 스텝으로 활동 중인 이진아 노무사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근로감독관 1인당 체불 사건을 50∼100건 정도 갖고 있는 등 1인당 관리하는 사업장이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업무가 과도하게 많은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로 감독관 전문성도 문제이고, 근로감독관이 당초 현장에서 요청한 인원 규모보다 훨씬 적인 인원이 선발되는 등 인력 부족 등도 문제”라며 “근로감독관들이 철저히 사건을 조사할 수 있는 걸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근로감독관을 찾는 경우는 임금이 체불되거나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사례가 있어 용기를 내 찾는 경우”라며 “객관적인 정황이 인정되는 것은 적극적으로 인용하려고 하거나 중재를 해야 하는데, 단순 과부화가 아닌 노동청에 가도 별 소용이 없다는, 별로 소용이 없다는 이미지와 경험을 쌓게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노무사는 “불시에 현장에 가서 취업규칙 등을 확인하는 등 실질 심사를 해야 하지만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부문도 있고, 소송으로 가지 않고도 빠르게 해결해야 하지만 어려운 것은 판단을 하지 않거나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노동청이나 근로감독관의 인원 부족과 과부하 등은 알겠지만 그럼에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합리도 함께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공동기획> 세계일보·직장갑질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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