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승현칼럼] 논쟁 수준이 정부 수준이다

관련이슈 이승현 칼럼

입력 : 2018-05-28 21:39:59 수정 : 2018-05-29 01:18:3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다양성의 꽃 피우는 경제 이견/생산적 담론 이어지느냐가 관건/대통령은 파워게임 경계하면서/대내외 탁견 종합해 길 찾아야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 책임자들 간에 전개되는 공개 논쟁을 보면서 국민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문재인정부는 ‘외팔이 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정 책임자는 경제학자의 탁견을 갈구하게 마련이다. ‘외팔이 경제학자’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이것은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제발 외팔이 경제학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린 데서 비롯된 말이다. 트루먼이 조언을 구하면 경제학자들은 “한편으로(on the one hand) 이렇고, 다른 한편으론(on the other hand) 이렇다”고 답하기 일쑤였다. 트루먼으로선 헷갈리다 못해 분통이 터질밖에. 트루먼만이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경제학자들에게 100개의 질문을 던지면 3000개의 답변이 나온다”고 했다.

이승현 논설고문
대통령 주변의 특급 참모진에 외팔이 학자가 드문 것은 사실 지당한 일이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는 “경제학자는 정책에 대가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러 측면의 득실을 신중히 재지 않을 수 없으니 경제 진단이나 정책 조언은 명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맨큐는 귀띔한다. “정책 결정이 쉬운 일이라고 하는 경제학자가 있다면 그 사람 말은 믿을 수 없다”고. 트루먼은 외팔이 학자를 못 만나서 외려 운이 좋았던 셈이다.

국내 논란을 보자. 주역은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장하성 대통령 정책실장 등이다. 이들 견해는 곳곳에서 정면 충돌한다. 한 책임자가 ‘한편으로’를 외치면 다른 책임자는 ‘다른 한편으론’을 외친다. 다 개별적으론 외팔이 성향을 내비치면서도 정부 전체 차원에선 다양성의 꽃을 피우는 형국이다. 문재인정부는 외팔이 정부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 구도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수목의 다양성이 전제돼야 숲도 건강한 법 아닌가. 외팔이 학자가 치켜든 깃발 하나만 보면서 단선적으로 따라가는 것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올바른 정책조합을 찾는 데 훨씬 더 유용할 수 있다. 트루먼과 마찬가지로 문재인정부도 운이 좋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고 긍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우선 작금의 논쟁이 왜 언론 매체를 통한 공개 설전으로 길게 전개되는지 알 길이 없다. 같은 정부의 경제팀이 한자리에 모여 충분한 논의를 통해 시각차를 해소할 기회는 없는 것인가. 만날 자리는 있는데 말은 안 섞나. 정부 내부자 논쟁이 펼쳐지는 개방적 풍토엔 높은 평점을 줄 수 있지만 생산적 담론으로 승화할 조짐은 잘 보이지 않으니 혼선·혼란에 대한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한 것은 논쟁 대상이다. 김 부의장과 김 부총리는 ‘침체국면’을 놓고 입씨름을 벌였다. 이것은 이해가 된다. 경기 진단은 난제 중의 난제니까. 한 전문가에게 천국으로 보여도 다른 전문가에겐 얼마든지 지옥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이 최저임금의 고용감소 부작용 여부를 놓고 엇박자를 내는 것은 납득할 선을 넘어선다. 실증적 논증이 가능한 문제 아닌가. 최근 공표된 통계청 자료만 봐도 최하위 계층 소득이 현저히 줄어들고 체감실업률은 13개월째 치솟은 것으로 나타난다. 정부가 밀어붙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나아가 ‘소득 주도 성장’은 죽을 쑤고 있는 것이다. 경제 교과서도 그렇게 가르친다. 그런데도 바로 그 지점에서 논쟁이 전개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번 공개 논쟁의 가장 위험한 측면은 아마도 파워 게임으로 번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눈덩이가 그렇게 굴러가면 다양성과 다원성이 확보된 건강한 숲의 이점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외팔이 학자의 독선과 독기만 남기 십상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민생도 더욱 힘겨워지게 마련이다. 결단코 피해야 할 시나리오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팀 운용 역량이 성패를 가를 관건이다. 문 대통령은 정부 내부에 범람하는 반시장·반기업 정서를 경계하면서 실사구시 차원의 생산적 담론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외부 조언도 가급적 폭넓게 구해야 한다. 앞서 인용한 맨큐의 귀띔도 깊이 되새길 일이다. “정책 결정이 쉬운 일이라고 하는 경제학자가 있다면 그 사람 말은 믿을 수 없다”는.

이승현 논설고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