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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한국,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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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28 21:32:06 수정 : 2018-05-29 01: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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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남북한 상황을 보면/ 신라, 삼국통일 달성 때 떠올라/‘사대·식민’은 아직 우리의 족쇄/ 단군의 전통 새롭게 정립해야 한국이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 될 날은 언제일까. 일찍이 기독교신학자 함석헌(咸錫憲)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창녀’에 비유한 적이 있다. “이 민족이야말로 큰길가에 앉은 거지 처녀다. 수난의 여왕이다. 선물의 꽃바구니는 다 빼앗겨버리고, 분수없는 왕후를 꿈꾼다고 비웃음을 당하고, 쓸데없는 고대에 애끓어 지친 역사다. 그래도 신랑 임금은 오고야 말 것이다.” 오늘날 왜 그 창녀론이 다시 떠올려지는 것인가.

창녀라는 말은 가부장-국가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한 남자에게 소속되지 않은 가정 밖의 여성에게 붙여진 불명예의 이름이다. 그러나 그 이름 속에는 언제라도 역전될 수 있는 여신적(女神的) 의미가 숨어있다. 인류문명의 후천여성시대를 맞아서 여신적 의미가 사회 각 분야에서 살아나고 있지만 우리 역사는 아직 그 모권적(母權的)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오늘날 한민족은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가짜주인에 머물고 있다. 국민 없는 국가인 북한의 주체사상은 실은 노예사상이고, 국가 없는 국민의 한국 기독교도 ‘주인의 기독교’가 되지 못하고 있다. 주인의 기독교, 주인의 역사가 되는 길은 아직도 멀고 멀다. 진정한 주인이 도래하기 전에 가짜주인이 먼저 나서는 법일까.

돌이켜 생각하면 함석헌이 쓴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민중신학과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의 ‘조선상고사’에서 드러난 ‘아(我)와 피아(彼我)’의 대륙사관은 주인 됨을 추구하고 있었지만 의식에 그칠 뿐 정작 역사를 장악하지 못했다. 함석헌은 단재 신채호의 역사적 낭만주의를 잘 따랐던 것 같다.

함석헌은 특히 신채호가 고려 인종(1127년) 때 발생한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 1천년 이래의 제일 큰 사건’이라고 한 것에 동감했다. “유파(儒派) 대 불파(佛派), 한학파 대 국풍파의 싸움으로 보는 것은 꿰뚫어 본 관찰이요, 이 싸움에 묘청이 패하고 김부식이 이긴 것은 한국 역사가 보수적·속박적 사상에 정복된 원인이라고 하는 것도 옳은 말이다.”

함석헌은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역사는 사랑에서 나왔고, 사랑에 이끌려 사랑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 ‘아가페’를 공자는 ‘인’(仁)으로 보았고, 노자는 ‘도’(道)로 보았고, 석가는 ‘빔’(空)으로 보았다. 노자의 말대로 억지로 붙인 이름이다. 그 자리에 들어가려는 운동을 믿음이라 해도 좋고, 통일이라 해도 좋고, 영화(靈化)라 해도 좋고, 영원으로 돌아간다 해도 좋다.”

기독교를 믿음으로써 한국사의 고난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고백한 그가 지적한 ‘우리민족의 결점’은 오늘날 보아도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한국 사람은 착하다’고 했는데 지금 착한 것이 어디 있나? ‘평화를 사랑한다’ 했는데 어디 평화가 있나? (…) 이조 일대가 당파 싸움으로 그친 것은 또 그만두고 그 때문에 나라를 몽땅 도둑맞고 종살이하기를 몇 십 년을 하다가 그래도 하늘이 무심치 않아 해방이라고 왔는데 건국운동이랍시고 3파, 4파로 싸우다가 종내 통일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그는 또 ‘개념 없는 민족’을 이렇게 질타하고 있다. “한국 사람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파고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다는 말이다. 깊은 사색이 없다. 현상 뒤에 실재를 붙잡으려고, 무상 밑에 영원을 찾으려고, 잡다 사이에 하나의 뜻을 얻으려고 들이파는, 컴컴한 깊음의 혼돈을 타고 앉아 알을 품는 암탉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운동하는, 생각하는, 곰곰이 생각(brooding over)하는 얼이 모자란다.”

함석헌은 때로는 기독교조차도 외래종교라고 주장하고, 만주 지방을 우리 겨레의 발생지라고 보는 민족사관을 가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함석헌의 사상을 보면 결국 식민지 치하의 지식인과 백성(국민)들은 ‘노예생활’을 거쳤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분노와 원한으로 인해 노예를 극복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의 ‘민중신학’은 마르크시즘 플러스 기독교의 이율배반적 동거이다. 모든 권력체계에 대한 부정적·반체제적인 노예의 관점이 아니라 진정한 주인이 되는 길을 추구해야 한다. 말년에 무정부주의자가 된 단재의 한계도 아쉬움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오늘의 남북한 상황을 보면 신라가 삼국통일을 달성하던 때를 떠올리게 된다.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7년간의 대당(對唐)투쟁을 통해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단재사학이 신라의 통일을 외세를 끌어들인 통일이라고 비난하는 대목이다. 지리결정론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도 북한은 중국의 힘을, 한국은 미국의 힘을 업고 통일을 이루려고 하는 국면이다. 강대국의 패권경쟁 속에서 한민족은 지금 평화냐 전쟁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대립하는 양극을 하나로 붙잡아갈 수 있어야 통일도 할 수 있고, 주인도 될 수 있는데 우리는 그 힘이 부족하다. 사대-식민은 아직 우리의 족쇄가 되고 있다. 남북한이 함께 공감할 전통문화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단군(신화역사)이고, 단군을 사상적으로 응축한 천부경(天符經)밖에 없다. 단군의 전통을 오늘의 문화전통으로 새롭게 정립할 때 세계사의 주인이 될 것이다. 민족문화가 단군과 천부경에 이르지 못하면 그 어떤 것이 들어올지라도 주인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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