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관저에서 이날 자정부터 1시간 동안 열린 NSC의 결론은 다섯 문장으로 된 문 대통령 입장이다. 회담 무산에 대한 당혹·유감 표명으로 시작한 입장문의 골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진심은 변함없는 만큼 한반도 비핵화 동력은 아직 상실되지 않았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갈등을 유발해 결국 회담을 무산시킨 대리인을 통한 간접 소통 대신 두 정상이 직접 소통하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문맥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황이 어려운 만큼 두 정상끼리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서 긴밀하게 직접 대화를 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메시지에 청와대의 향후 프로그램이 다 녹여져 있다”고 설명했다.
심각한 심야 NSC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관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들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북·미 정상회담 취소 결정 배경을 분석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문 대통령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청와대 제공 |
회담무산의 후폭풍이 상황오판론과 정보부재론 등으로 덮친 상황이지만 청와대는 문 대통령 입장 발표 이외 어떤 사족(蛇足)도 달지 않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심을 언론에 공개하기 몇분전에서야 주미 한국대사관에 “문 대통령에게 빨리 알려드리라”며 통지했다고 한다. 이후 청와대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을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미측과 사전 협의·통지없이 언론을 보고서야 청와대가 사태를 파악한 ‘코리아 패싱’현상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놓칠 수 없는 기회’를 되살리기 위한 문 대통령 노력은 다시 강화되겠지만 그 범위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애초 비핵화 협상은 북·미간 의제인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직접 연락하라고 한 만큼 ‘정직한 중개인’으로서 문 대통령의 중재외교가 개입할 여지는 더 적어졌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미 지난 2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자신의 역할 변화를 시사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저의 역할은 미국과 북한 사이의 중재를 하는 그런 입장이라기보다는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또 그것이 한반도와 대한민국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과 함께 긴밀하게 공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한·미 공조에 더 큰 무게중심을 실은 것이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이 북·미 대화에 관한 두 정상의 의지를 서로에게 전달해 대화 모멘텀을 잃지 않도록 하는 역할은 지속하되 비핵화·종전선언 로드맵 등 구체적 협상 내용에는 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중재 역할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제2차 북·중 정상회담 후 북한 기류가 변했다는 미국의 의심에 대해서는 “저도 지금 감이 잘 안 오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든 종전선언이든 중국은 처음부터 참여해야 한다”며 “중국과 협의해야 비핵화도 한반도 평화체제도 빨리 올 수 있다. 미·중 사이 갈등이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잘 협력해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성준·유태영·최형창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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