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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트럼프의, 트럼프에 의한, 트럼프를 위한 공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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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25 08:04:23 수정 : 2018-05-25 08: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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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취소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형식을 빌렸다. 미국 외교사에서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기괴한 방법이다. 그렇지만 이 편지의 문구를 한 자 한 자 자세히 뜯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관, 세계관, 외교관, 인생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언론들은 이 때문에 이 편지의 문구 의미를 설명하는 ‘해설서’, ‘주석서’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김 위원장이지만 사실은 트럼프의, 트럼프에 의한, 트럼프를 위한 편지이다.

◆외교 문제의 사적인 접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공개편지를 보낸 것은 외교 문제를 사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그의 외교관을 드러내고 있다고 미국의 시사 종합지 ‘애틀란틱’이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 초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모두 해결하지 못한 북한 핵 문제를 ‘협상의 달인’인 자신이 나서면 해결될 것이라는 지극히 트럼프다운 접근 태도를 보였다. 그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방북을 통해 전달받은 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즉각 현장에서 받아들인 것도 부동산 거래처럼 북핵 문제를 타결할 수 있을 것으로 섣불리 예단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으로 보낸 공개 서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사적인’ 편지에 6.12 약속 장소에 가지 못하게 됐다고 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이 드라마의 조기 종영을 바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는 이번에 회담 취소로 클라이맥스를 장식했지만 김 위원장이 극적인 조치로 반전 드라마를 연출하라고 권고했다. 애틀란틱은”이 편지에는 불합리한 추론, 허풍, 모욕, 아첨, 절반의 진실이 뒤섞여 있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이 편지에는 트럼프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의 공을 차지하려는 욕심과 여차하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겠다던 공언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왔다는 점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지도자

트럼프 대통령은 참을성이 부족한 성미 급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기애가 강한 트럼프는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되로 받고 말로 갚는 식으로 무차별 보복을 가한다. 북한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 핵 문제의 리비아 모델 적용 주장에 발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펜스 부통령을 겨냥해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조롱하자 완전히 자제력을 잃어버렸다.

북한은 6.12 정상회담을 앞두고 샅바 싸움을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대리인인 펜스 부통령에게 인신공격을 퍼붓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는 국내 정치 문제뿐 아니라 대외 정책 분야에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감정 대결을 불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뉴욕 주 롱아일랜드의 베스페이지에서 열린 불법 이민자 대책 라운드테이블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리얼리티 TV 쇼

트럼프 대통령은 ‘어프렌티스’라는 리얼리티 TV 쇼로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국내외 정책을 리얼리티 쇼처럼 다룬다. 시청자가 텔레비전 스크린 앞을 떠나지 못하도록 서스펜스를 연출하는 게 트럼프의 특기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취소한 장면은 시청률 대박을 노릴 만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애증의 관계가 비등점을 향해 치달아 성미 급한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파국’을 선언했다. 트럼프-김정은 평화회담 기념주화까지 만들었던 트럼프는 극적인 반전 카드로 긴장감을 최고 수위로 끌어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취재진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따뜻했던 봄날 회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즐거웠던 한때를 추억하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트럼프는 이 편지에서 핵전쟁 위협을 가했다가 갑자기 옛일을 회고하기 시작한다.

“나는 아주 멋진 대화가 당신과 나 사이에서 준비돼가고 있다고 느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오직 그 대화이다. 언젠가 나는 당신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그러는 사이, 지금은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있는 인질들의 석방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것은 아름다운 제스처였으며,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 편지 중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그 대화이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직접 대화한 적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줄곧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다. 애틀란틱은 “트럼프가 이번 편지에서 김 위원장과 직접 대화를 한 사실이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공식 시인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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