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특파원리포트] 벼랑 끝 전술 vs 미치광이 이론

관련이슈 특파원 리포트

입력 : 2018-05-23 21:22:32 수정 : 2018-05-23 21:22:3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국기연 워싱턴특파원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머리를 맞댔다. 이번 회담은 6·12 북·미 정상회담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개최돼 타이밍이 좋았다. 그러나 성과는 미지수이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미니 기자회견’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입장 차이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다가올 북·미 회담’ 등의 표현으로 이 회담을 기정사실로 여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회담이 열릴 수도 있고,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북·미 회담은 이제 문 대통령의 트럼프 대통령 설득에 달린 게 아니라 북·미 간 막후 대화에서 북한이 어떤 양보안을 내놓느냐에 달렸다.

1990년대 초 이래 북핵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벼랑 끝 전술’은 북한의 전유물이었다. 이것은 위기를 극대화한 뒤 파국을 피하려는 상대방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북한의 상투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면 북한보다 한 걸음 더 위태로운 지경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밀어붙인다. 이른바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이론’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중 누가 먼저 눈을 깜박일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을 과소평가했다가는 큰코다친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을 다독여 북·미 정상회담의 궤도 이탈을 막는 데 그쳤다면 이번 회담이 크게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가 없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옭아매 비핵화의 길을 가도록 유도하는 공동의 전략을 마련하고, 실제로 향후 열릴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 전략이 통해야 문 대통령의 운전 실력이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국가적 보검’인 핵무기를 포기할 정도로 매력적인 유인책이 남아 있을까. 아마 없을 것 같다. 트럼프 정부가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는 ‘정치적 허튼소리’라고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 대사가 일갈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의 성패는 CVID의 실현이 아니라 불완전한 비핵화를 완전한 비핵화인 것처럼 얼마나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데 성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북·미 정상회담이 살아나도 비핵화의 길은 멀고 험하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도 그 이후 한반도 상황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의 불완전한 비핵화 상태를 관리하면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지뢰밭을 헤쳐가야 한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나 평화를 거부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평화 정착의 토대가 구축될 여지는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회담에 응할지 말지 결정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북한이 답할 차례이다. 한국과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연기, 취소 상황에 모두 대비해야 하는 국면을 맞았다. 문 대통령이 운전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는 지금부터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과정보다 실제로 회담이 열린 뒤의 상황이 더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극적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불완전한 비핵화 합의가 이뤄지면 후속 절차를 통해 비핵화를 단계별로 실현해가야 하고, 회담이 결렬되면 제2의 한반도 전쟁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 다행히 문 대통령은 빈손이 아니다. 한반도 신 데탕트(긴장 완화) 시대를 연 주역으로서 국제무대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확보해 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가는 문 대통령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 보인다.

국기연 워싱턴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