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최근의 쌀 가격 흐름에 정부가 안심해서는 안 된다. 쌀 시장 격리조치는 근본적인 처방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하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꾸준히 줄어 지난해 61.8㎏까지 떨어졌다. 쌀 수요 감소는 가격 하락의 주원인이다. 정부가 쌀 공급 과잉을 막고자 도입한 쌀 생산 조정제도가 얼마나 효과를 낼지도 미지수다. 이 제도는 벼농사 대신 다른 작물을 심으면 논 1㏊당 보조금 340만원을 2년간 한시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올해 목표치 5만㏊의 75%밖에 신청하지 않았다. 쌀값 상승이 쌀 포기 신청을 망설이게 했다. 게다가 올여름 태풍 없이 6년째 풍년을 만나면 쌀 과잉 공급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박찬준 사회2부장 |
차제에 과잉생산→가격하락→시장격리조치의 악순환을 끊을 묘안을 찾아야 한다. 농업계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에 기대하는 모양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타결돼 유엔제재가 풀리면 북한 쌀 지원사업을 선순위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고려한 인도주의적인 일인 데다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하는 등 여러 효과를 낼 수 있다. FAO는 올해에도 북한을 식량 부족 국가로 지정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북한 5세 미만 어린이 28%가 만성 영양실조 상태이고, 4%는 급성 영양실조로 고통받는다고 한다. FAO는 지난 3월 북한이 수입하거나 국제사회의 인도주의 지원으로 채워야 할 식량 부족분은 약 46만t에 달하는 것으로 봤다. 대북 쌀 지원은 남한의 쌀 수급에도 도움이 된다. 농민단체는 북한에 40만t 이상을 지원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 40만t을 북한에 지원하면 국내산 쌀값이 80㎏ 가마당 7000~8000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수확기 쌀값이 1000원 떨어질 때마다 쌀 변동직불금이 약 350억원 늘어나기 때문에 최대 2800억원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북한에 쌀을 보내면 정부비축물량이 줄어 관리비용을 절감하고, 쌀 가격도 안정시킬 수 있는 좋은 결과까지 거머쥔다. 최근 북한의 발언이 심상치 않아 농업인들의 마음은 불편하다. 북한의 체제보장이나 비핵화 방식을 놓고 남한과 미국을 향해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 협상을 조율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99.9% 성사’를 예상한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이뤄지고 핵 폐기 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되기를, 추수가 끝나도 쌀 가격 폭락에 멍든 농심(農心)은 간절히 소망한다.
박찬준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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