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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한반도 평화 오면 美 전략자산 필요없다”…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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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19 10:00:00 수정 : 2018-05-19 17: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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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자산. 미국의 동맹국이나 우방국을 제3국이 핵공격 위협을 과시하려 들 때 미국의 억제력을 제공하는 군사적 수단을 말한다. 동맹국에는 미국의 방위공약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고, 적대국가에는 침략 또는 도발 의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도발이 일어나거나 전쟁이 발생할 경우 압도적인 반격능력을 제공한다.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 B-52H가 활주로를 이륙해 임무 수행 공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공군 제공
전략자산은 핵능력을 갖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B-2, B-52 전략폭격기, 전략핵잠수함(SSBN)과 재래식 타격능력을 보유한 B-1, 줌왈트급 구축함, 핵추진항공모함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동맹국과 해외 주둔 미군을 보호하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패트리엇(PAC-3), SM-3 등의 요격체계도 포함된다. 이같은 전력이 배치된다면 동맹국과 그 주변국에 강력한 전략적 메시지를 던지게 되는 셈이다.

미국 전략자산의 위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다. 핵개발을 본격화한 이래로 북한은 미국이 보유한 대부분의 전략자산을 상대한 북한으로서는 한반도에서 미국 전략자산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다. 11~25일 실시되는 한미 연합 맥스 선더 훈련에 B-52가 참가하지 않았는데도 이를 거론하며 남북고위급회담을 연기한 것을 놓고 국내에서는 “전략자산 전개는 필요치 않다” “이런 시기에 한미 연합 훈련이라니 정무 감각도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한이 한미 공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 훈련을 이유로 남북고위급회담을 전격 취소한 가운데, 16일 오전 광주 공군 제1전투비행단 활주로에 미군 F-22 랩터가 착륙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한미가 성의 보였는데도 北은 트집잡았다

일반적으로 한미 연합 훈련이 실시되면 한미 군 당국은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국내외 언론을 초청, 취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미군 홈페이지에는 훈련 사진이 공개된다.

하지만 이번 맥스 선더 훈련에서 이같은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군 당국은 맥스 선더 훈련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조성된 한반도 대화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차단하는데 주력했다. 
한국 공군과 국방부, 주한미군은 이번 맥스 선더 훈련에 대해 공식 브리핑을 실시하지 않았다. 사진이나 영상도 제공하지 않았고 취재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군의 움직임을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신속히 공지하는 미국 태평양사령부나 미국 공군 홈페이지 및 소셜미디어에도 맥스 선더 훈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미국 공군 스텔스 전투기 F-22의 참가 역시 사전에 공지되지 않았다. 이달 초 광주 제1전투비행단 기지에 F-22 편대가 나타난 것을 발견한 시민들이 사진을 찍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자 언론들은 국방부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고, 국방부는 마지못해 기본적인 사실확인만 해줬다. 군 소식통은 “비공개 조치를 취해도 주요 공군기지가 민간인 거주지역과 인접한데다 시민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온라인에 올리면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F-22를 두고 전략자산이라고 주장하지만 F-22는 스텔스 전투기다. 핵우산을 제공하는 전력도 아니고 탄도미사일 방어능력도 없으며, 재래식 정밀타격과는 거리가 있는 공중전 능력이 중시되는 전투기다. 지난해 12월 한미 연합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 훈련에도 참가했으며, 그 이전에는 서울 에어쇼(ADEX)에도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B-52의 경우 한반도에서 훈련을 실시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들어오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미군측이 기존 계획을 변경하는 등 한국측의 입장을 가급적 들어주려 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미 군 당국이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로키(Low-key)로 맥스 선더 훈련을 진행하려 노력했음에도 북한은 이를 문제삼으며 우리측을 맹비난했다. 전략자산을 매개로 한미 연합훈련을 비판해 동맹 체제에 균열을 내려는 의도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군 안팎에서는 “이 정도 훈련도 문제 삼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는 말도 나온다. 향후 진행될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 한미 연합훈련에도 북한이 똑같은 태도를 취한다면 한미 연합훈련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전문가나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전략자산 전개가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미국 전략자산을 동아시아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인 것은 북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다. 전략자산은 동맹국을 방어하는 역할이 최우선이며, 공격적 성격은 동맹국을 적대국이 군사적으로 위협했을 때 두드러진다.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하고 군사적 위협을 거두면 미국 전략자산은 북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 B-1B가 2017년 7월3일 한반도에 전개해 한국 공군 F-15K 전투기와 함께 비행하고 있다. 미국 태평양사령부 제공
◆전략자산 안오는게 더 무섭다

미국 전략자산이 전개하지 않으면 한반도 정세가 안정될까. 북한은 안심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설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원치 않았는데도 미국 전략자산이 한반도 인근에 출현하는 경우다. 주기적으로 미국 본토 부대와 교대하며 동아시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전략자산들은 유사시를 대비해 다양한 전개 훈련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 영토나 영해, 영공, 방공식별구역, 해군 작전구역에 진입하지 않는 대신 한반도 정세와 무관하게 동해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이나 오키나와 북방 해역 등에서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를 딜레마에 빠뜨릴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미국 전략자산은 한반도에 전개하지 않았으므로 우리 정부는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지형적으로는 북한과 인접한 지역에서 미국 전략자산이 활동했기 때문에 북한이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들여놨다”고 반발하면 한반도 정세가 요동칠 수 있다. 이 경우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우리 정부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진다.
미국 해군 핵추진항공모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호가 태평양을 항해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제기될 경우에도 문제는 발생한다. 규제가 도입되면 그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곧바로 등장하곤 한다. 미국 전략자산 전개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전개가 불가능해지면 미국의 군인들은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전략폭격기는 주일 미국 공군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동해 일본방공식별구역에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한국방공식별구역 경계선을 따라 북상하면서 북한 동해안에 접근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핵추진항공모함도 일본 해상자위대의 호위 속에 한국 해군 작전구역 밖에서 활동하며 함재기를 띄울 수 있다.

한국측의 도움 없이도 한반도 인근에 전략자산을 전개해 작전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 미국은 한국 정부의 눈치를 볼 필요성이 줄어든다. 이는 미국의 레드라인(대북정책에 설정된 정책전환의 한계선)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난해 20여개의 대북 군사옵션을 검토했던 미국은 필요하면 언제든 군사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을 예방하려면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인 한반도 전개를 허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피할 수 없으면 이용하라”는 것이다.

사회 분야에서는 정형화된 틀이 형성되면 환경이나 조건이 바뀌었는데도 기존 형태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경로 의존성이다. 미국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정기적으로 전개하고 우리 군과 연합훈련을 실시하면 미군으로서는 한국군의 지원에 익숙해진다.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면 미군은 한국군 지원이나 동의 없이 전략자산을 전개하는 방안을 깊게 생각지 않게 된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 정세에 맞게 미국 전략자산 운용을 제어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북한과 미국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딜레마가 서서히 드러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맥스 선더 훈련과 B-52 전개 논란은 그 서막이다.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우는 북한과 동맹의 가치를 강조하는 미국 사이에서 우리 정부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앞으로 계속될 미국 전략자산 전개를 우리 정부가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이같은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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